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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디디는 고소영 로컬 콘텐츠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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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디디는 고소영 로컬 콘텐츠 크리에이터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5.02.04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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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수년째 광풍으로 불어닥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도 언제나 불안정을 원료 삼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도전의 범위는 좁기도, 넓기도 하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은 없던 길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모든것이 수도권으로 쏠려가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지역의 이야기를 자산으로 볼 줄 아는 기막힌 안목의 소유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9년차 기획인으로 살고 있는 고소영 로컬 콘텐츠 크리에이터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편집자주 

"아직도 저희 부모님도 물어보세요. 너 도대체 밖에서 뭐하고 다니느냐구요."

말간 얼굴의 소영씨는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약간은 멋쩍어 하면서도 특유의 쾌활한 말투로 대답했다.

유난스러운 아이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진 않았단다. 공부에도 소질이 있던 소영씨는 대학 전공으로 생명공학을 선택했다.

19살 소영씨 눈엔 그리 멋져보였던 생명공학이지만, 막상 공부를 제대로 시작해보니 콩깍지가 벗겨지듯 조금씩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것 치고는 대학생활을 길게 했던 소영씨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친구들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더더욱 자신이 무엇을 뭔하는지를 깊게 생각하게 됐다.

마침 사회적으로는 사회적기업 육성 붐이 일었다. 청년들에게 사회에 환원하는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하는 정부의 지자체의 시도도 잇따르던 때였다.

생명공학을 전공할지 다른 일로 빠져볼지 고민하던 소영씨는 청년양성인재 프로그램이 덥썩 참여했다. 

기획의 ㄱ자도 모르던 소영씨가 가장 먼저 맞닥뜨린 첫 기획은 바로 한옥마을의 미래를 구상하는 일이었다. 

한옥마을의 미래를 그려서 내놓았던 소영씨 팀이 당시 경연에서 1등까지 거머쥐었다. 그걸로 대학총장상까지 받으며 효능감을 느낀 소영씨는 기획이 재밌는 일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단다.

그렇게 그 길로 9년씩 달려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전북에서 나고 자난 소영씨지만 전북은 문화기획판이 그리 넓진 않았다고.

그래서 문화와 기획을 접목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문화기획자들의 강연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쫓아 다닌 강연장에서 만난 분들이 소영씨에게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 중 하나가 소영씨가 처음으로 기획일의 참맛을 배운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였다. 

국토부에서 도시재생사업으로 첫 공모를 해 생겨난 5년짜리 사업이었던 센터는 전주의 원도심을 재생시키는 프로젝트를 일궈냈다.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뭘 알고 갔다기 보단 우연한 기회로 참여한건데요.  정말 재밌는 일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나요."

바로 그곳에서 일하며 함께 했던 일 중 하나가 '고물자골목 재생사업'이다. 

 

고물자 골목은 전주 토박이들에게도 생소할 수 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

남부시장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고물자골목은 옛 전주부성 지도에도 표기돼 있을 만큼 주요 상권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은방골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구호문자와 각종 미제 물품이 유통되면서 구호물자골목, 양키골목 등으로도 불렸다.

이후에도 고물자골목의 이름은 시대의 변천사에 따라 수없이 다르게 불렸다. 1973년까진 골목 끝에 배차장이 있어 배차장골목이라고 불렸으며, 오꼬시골목, 한복골목 등 여러 이름을 거치다 가장 활발했던 시절의 구호물자골목을 빠르게 부를때 들리는 발음대로 고물자골목이 됐단다.

바로 이곳에 공방 작가들을 비롯해 예술인들이 모이면서 이야기거리가 생겨났다. 소영씨는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았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다 있는데, 고물자골목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변 상권에 있는 분들을 만나서 이 골목에 스토리텔링을 입혀보자고 생각하게 된거죠."

 

지금이야 지자체에서 기획을 할때 가장 자주 찾는 '네임드' 기획인이 됐지만, 이 때의 소영씨는 기획이 뭔지 찾아가는 초심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멋모를때 저지를 수 있는 다양한 용기들을 부릴 수 있었단다. 퀄리티와 완성도를 챙겨야 하는 지금의 부담감에서 15도쯤 비켜나 있었기 때문이다.

골목이야기는 결국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 잘 아는 법.

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전봇대를 없애달라는 말이나 건물을 세워달라는 말도 당연히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 즉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변화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잔치도 열고, 축제도 열고, 지역상품이나 지역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확보에도 직접 나섰다. 

결국 지역 브랜딩을 하기 위해선 유무형의 자산 모두가 활용되야 한다는 점을 이 일을 통해 깨닫게 된 셈이다. 

"제가 하는 일이 결국 그런 거 같아요. 다른 산업들이 상품을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라면, 브랜딩은 소비자들의 요구가 없어도 이 상품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 나가는 점이라는 거죠. 그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센터에서 일한 경력과 쌓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제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소영씨는 정규직이 가지는 안정감이 당연히 부러울 때가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젊기에, 가슴 뛰는 일을 더 하고 싶다고 말하는 소영씨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한가득이다. 

"저는 무서움도 별로 없는 편이구요, 몸으로 부딪혀가며 깨닫는게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일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어려운 상황도 만나겠지만, 활력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직은 더 크네요."

요즘은 지역의 재발견을 넘어 다시 자신을 파고들며 찾은 웰니스 프로그램에 집중하려 한다는 소영씨는 로컬 크리에이터로 산다는 것이 결국은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않은 채 또다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이립(而立)의 나이, 스스로 설 수 있는 나이에 도착한 소영씨의 다음 도착지는 어디일까. 그곳의 이야기는 소영씨의 글과 입을 통해 어떻게 전달될까. 예측하는 일마저도 설렌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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