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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바닷가 마을을 30년 만에 국내 최대 산업도시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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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 바닷가 마을을 30년 만에 국내 최대 산업도시로 성장
  • 김운협
  • 승인 2008.07.15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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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을 올린 전북 조선산업, 이제 시작이다! == 3회- 상전벽해의 현장, 울산을 가다

“전국 모든 산업도시들이 그렇겠지만 울산은 현대중공업이 들어오면서 정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이뤘지. 지금 생각해도 믿어지지가 않아”
울산을 방문한 기자가 처음으로 만난 김성곤(75·울산시 동구) 할아버지의 이 한 마디가 현대중공업의 성공신화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피부를 느끼게 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1970년, 울산 미포만에 국내 처음으로 조선소를 건설한 이후 30년 간을 옆에서 지켜본 산증인인 김 할아버지의 말은 군산조선소 유치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도민들의 심정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실제 울산 해안가를 중심으로 집체만한 구조물들이 즐비한 현대중공업의 다양한 사업체들을 바라보며 전북의 산업발전 또한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낙후와 소외, 농도로 대변됐던 전북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유치로 인해 이제는 산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만큼 30년 후 전북의 모습이 기자를 놀라게 했던 현재 울산처럼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 누가 봐도 무모한 ‘짓?’
지난 1970년 현대중공업의 대형 조선소 건설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로 인식됐다.
선박건조에 대한 기술력을 비롯해 전문 인력과 자금 등 어느 것 하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고 선박 수주에 성공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정부의 경제정책과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경영전략이 일치하며 조선산업 육성에 뛰어들었지만 당시 세계 시장점유율이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쉬운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조선소 부지로 점찍어 둔 울산 미포만의 사진과 지도 한 장, 영국 조선소에서 빌린 초대형유조선 도면 한 장만으로 조선소 준공도 전에 총 12척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1983년 한해에만 210만총톤 상당의 선박 수주해 전 세계 발주량의 10.7%차지, 건립 10년 만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제치고 세계 1위 조선업체로 부상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은 그 당시 세계 조선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던 일본 유수 조선업체와 건조계약을 체결하는 등 국제 공신력을 키워갔다.
집념과 의지로 일궈낸 ‘성공신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 위기를 기회로
이 같은 현대중공업의 성공가도도 지난 1973년 말 제1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오일쇼크의 여파로 VLCC의 수주가 뚝 끊긴 것.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1974년 중반부터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대형선 위주에서 다목적 화물선과 벌크선, 목재운반선 등의 중·소형선 건조를 병행하는 등 수주선정을 다변화시켜 상황에 대처했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작업에도 착수했다.
울산철공주식회사(현 한국프랜지)와 조선소 내 철구사업부(현 플랜트사업본부), 수리조선소(현 현대미포조선) 등을 잇따라 설립, 조선관련사업을 확장했다.
조선관련사업 확장과 함께 전체 선가의 10%를 차지하는 엔진을 자체 생산키로 하고 엔진사업본부를 발족했다.
이후 해양개발사업부 등을 신설, 사업다각화를 통한 대형공사 수주에 집중했다.
그 결과 1978년 국내 100대 기업 중 5위에 랭크됐으며 1980년에는 일본 경제전문지 ‘다이아몬드’ 지의 조선분야 세계 10위 기업으로 선정됐다.
이는 조선소 준공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급부상,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 기술개발이 경쟁력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현대중공업은 기술집약형체제로 방향을 전환, 세계시장의 1위를 이어갔다.
국내 최초 민간연구소인 용접기술연구소와 선박해양연구소를 각각 설립 고부가가치선 건조에 집중했다.
군함 등 특수선을 비롯해 특수상선, 장거리 고속 쌍동여객선, LNG선 등으로 생산품종을 다변화, 한국 최초의 LNG선 건조에 성공했다.
지난 2005년에는 꿈의 컨테이너선인 1만TEU급 컨테이너선을 수주해 지난해 선주사에 인도했다.
이후 세계 최대급인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 8척을 수주, 현재 건조 중이며 1만5000TEU급 컨테이너선도 개념설계를 완료했다.
이는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기술개발, 사업다변화를 통해 조선소가 들어선 지 30년 만에 울산을 전국 최고 수준의 산업도시 견인, 국민소득 4만 달러 부자도시로 이끌었다.
울산=김운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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