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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 학생된 행복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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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세 학생된 행복한 사연
  • 이종근
  • 승인 2008.02.14 1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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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바이러스 즐거운 인생 -<1>배첩명인 변경환씨

당신이 기분이 좋아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감정은 럭비공과 같아 바이러스처럼 마구마구 전염되는 것인가. 즐거운 기분, 행복감, 열정,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설렘 그런 감정들.
 그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그저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길 원한다. 나, 오늘 행복 모드에 딱 걸렸네. 편집자.


 문화재급 배첩명인 변경환씨(62, 대한명인 제05-24호, 전주 기린산방 대표)가 화사한 봄빛을 집안 가득 불어넣는다. 바깥 날씨는 제법 쌀쌀하지만 큰맘 먹고 시작한 청소인지라, 예서 멈출순 없다.

 설 명절을 전후로 표구점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내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지만 휘파람 절로 난다.
 ‘쓱쓱 싹싹 훌~훌’. 그러나 마음은 부여의 콩밭에 가있은 지 이미 오래다.

 “6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를 다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오는 3월 초 한국전통문화학교(총장 이종철, 익산출신) 전통문화연수원에 입학해 2년 동안 문화재 보존 복원 과정을 도제식으로 교육받게 됐으니, 아마도 살면서 가장 큰 경사가 아닌가 해요.
 이순(耳順)을 넘긴 사람이 무슨 공부를 하느냐고 핀잔을 한 지인도 있었습니다만 배움의 길에 어찌 젊고늙음의 잣대가 있으리오. 해묵은 때를 모두 털어내니 마음마저 날아갈 기분입니다”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생명을 다한 듯한 그림이, 바삭바삭하게 갈라져 팡이내음 퀴퀴한 병풍이 마법에 걸린 듯 본래 모습을 되찾게 했던 그가 삶을 엎그레이드 하기 위해 표구점 일은 아들 석찬씨에게 맡기고 홀홀단신 ‘배우지 못한 한(恨)’을 손수 풀기로 한 것. 물론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아내에게 적잖이 미안한 모양이다. 

 해당분야 최고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한 한국전통문화학교 전통문화연수원은 교육생들로 하여금 각종 공모전 출품 및 전시 지원, 기숙사 및 관련 시설 사용 혜택, 수료 후 학교기업 등을 통한 연구 사업 참여 기회 등을 부여한다. 연차적으로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 및 유럽, 미주지역 해외 교육 연구기관과 교류 협력 및 학술교류도 적극 지원할 방침.

 풀을 먹여 붙이고 두드리는 등 꼼꼼하고 정교한 손길로 훼손된 예술품을 되살려내는 그는 세월의 더께를 40여년 동안 말끔이 씻어낸 채 ‘전통문화’를 올곧게 배첩하고 있는 장인.

 지난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작업한 한국금석문대계(전 7권, 원광대학교 출판국 발행)를 포함, 황산대첩비지, 이모본 이태조영정, 황희정승 영정, 무성서원 최치원 영정, 광개토대왕비 등 문화재와 함께 전주시 강암서예관, 전북도립미술관, 국립전주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 그리고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 이르기까지.

 “배첩(褙貼)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 아름다움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 처리기법 입니다. 흔히 ‘표구(表具)’로 알고 있지만, 이는 일본에서 들어온 개념입니다”
 복원의 기본 재료는 풀. 밀가루로 풀을 쑤고 녹말을 완전히 내려, 이를 말려 가루로 보관하고 있는 등 ‘독특한 풀쑤는 법’을 지켜 오고 있는 것은 기린산방만의 노하우다.

 지금 막, 계남 송기상씨의 ‘충효전가(忠孝傳家, 집안에 충성과 효도를 전한다)’란 작품의 배첩 과정이 시작됐다. 순지한지로 초배를 한 만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거나 상하지 않을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국보 배첩 하나를 하는 데 무려 10년 여를 잡기도 한답니다. 학교에서 조선시대의 궁중 병풍을 완벽히 재현해내는 열성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한지를 제조, 두리마리형 전통양식으로 재현한 직지상장을 체코국립박물관에 수여하는 것을 보면서 전주의 전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때문에 빨래를 해도 좋은 전주한지의 재료도 연구하고 싶구요”

 붉은 해로 물든 분홍빛 구름이 해질녘 서편 하늘의 은은함을 뿜어낸다. 이윽고 해와 물결 옆으로 소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자 학이 소나무 가지 위로 날아든다. 십장생 병풍 한 벌, 눈부시게 변명인의 시야 가득 들어와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소살거린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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