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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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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감수성
  • 전민일보
  • 승인 2016.08.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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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 산책길에 지렁이가 말라 죽어 있는 것을 자주 본다. 지렁이 주변에는 문상을 온 듯 개미떼가 상복을 입고 시커멓게 몰려 있다. 어떤 생명이든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아름답고 기쁠 일이지만 생명이 지는 것은 아쉽고 슬프다. 길섶에 핀 풀꽃 한 송이조차도 필때는 아름답지만 말라서 지면 애달프다. 우리사회가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생명에 대한 외경심과 존엄성이 사라지고 있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무감각해진 탓이다.

생명감수성은 생명체에 대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성질이나 느낌을 말한다. 어떤 생명체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아름답다. 그런데 이런 생명체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이 무디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할 수 없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 산고를 겪고 성장하면서 성장통을 앓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숙한다. 어떤 생명체든 언젠가는 사멸한다. 만약 생명체가 태어나서 죽지 않고 영생한다면 생명이 지닌 고귀함이 덜할 것이다.

살아있으면 누군가에게 풍경이 된다. 하루를 살다 기울어지는 석양은 저녁 때 사람 이 사는 마을로 향하는 이에게 풍경이 된다. 앞산에 뒤꿈치 들고 서 있는 솔은 하루를 속 펄펄 끓이며 사는 이에게 매미울음소리 같이 손뼉을 친다.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땡볕 아래 제 팔을 넉넉하게 벌려 그림자를 만든다. 달빛 아래 언덕배기에 핀 달맞이꽃은 어둠 속에서 한폭의 풍경으로 자리한다. 풀을 뜯으며 꼬리로 파리를 쫓는 소는 들녘의 풍경이 된다.

살아있으면 누군가에게 배경이 된다. 세월의 강이 흐를수록 허리가 굽고 주름투성이인 삶을 살아오신 부모님은 뒷산 같은 배경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눈이 멀고 입이 닫힌 아들은 밤낮을 우듬지에 매달려 살지만 내 맘에 병풍처럼 서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은 기를 쓰고 살려는 역설적 고백이다. 가족은 누구보다 든든한 배경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 역시 삶의 배경이 된다. 꽃은 서로에게 배경이 되어 모여 피어야 아름답다. 우리도 꽃처럼 모여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자살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사는 것이 팍팍하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숨이 막히고 절망스럽기 때문이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한 가족이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가족자살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살인 같은 반인간적인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모순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먹고살기 힘들고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삶이 풀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람 목숨을 하루에 한 장씩 뜯어 버리는 일력쯤으로 여긴 결과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자신을 가두며 산다. 가상공간을 떠돌며 방랑자처럼 살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신비감이나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깨달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을 들여다볼 틈이 없고 앞산에서 뒷산으로 마실가는 새의 비행을 눈에 넣지 못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이 펼치는 공연에 무심하다. 살진 달빛 아래 달맞이꽃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지만 달뿐만 아니라 꽃이 달을 맞이하는 것조차 보지 못하고 넘긴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들짐승이나 산짐승을 봐도 전혀 가슴쓰리지 않고 부고를 받고도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외경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사람냄새를 풍긴다. 사람한테서 사람냄새가 나야 사람답다.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외경심보다 입시에 필요한 지식을 주입시키고 돈 버는 것을 최고목표로 삼고 사는 세상에서 사람냄새가 날 리 없다. 살아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풍경이 되고 배경이 되듯이 우리 역시 생명이 있는 것을 사랑하며 누군가의 풍경으로 서 있고 배경으로 자리해야 한다. 이런 사회, 이런 세상을 만들려고 나는 너에게 풍경이 되고 너는 나에게 배경이 되어야 한다.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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