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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일보
  • 승인 2015.08.1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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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수필가

 
건국대학병원 송명근 교수는 6년 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2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은 뒤 사회 환원을 명시한 유언장을 쓰고 이를 공증해 놓았다. 아들과 딸에게는 각각 3억 원의 결혼과 전세 비용을 주고 나머지는 모두 환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생활로 번 돈은 사회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 나의 인생철학’이라고 송 교수는 밝혔다. 매너 좋은 낚시꾼이 손맛을 본 뒤 물고기를 다시 물에 돌려보내는 것 같은 신선함이 느껴진다.

1990년대 초엔 대동맥 인공판막 수술에 4∼5백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송 교수는 매주 돼지 심장 10여 개를 구해서 자신이 개발한 판막기능 보조 수술법을 연구했다. 그 뒤 심장판막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를 세웠는데, 값은 기존 제품의 절반 정도였다. 이 제품은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회사 지분의 40%를 가진 데다 제품판매 로얄티로 200억 원의 돈이 들어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불어날지 모른다.

송 교수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심은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전기를 읽고 영향을 받았다. 현재 전세계 심장판막 시장은 1조 5천억 원 규모로 그의 제품이 5년 이내에 1/3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재산이 더 늘면 마음이 변할까 봐 유언장 공증 공개를 서둘렀다고 밝혔다. 그는 세가지 원칙을 세웠다. 심장병 연구와 소외된 노인 복지, 그리고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공증해두었다.

세계 34위 부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왕자가 자신의 전 재산인 320억 달러(약 35조8천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그 돈은 다른 문화 간 이해 증진, 사회·경제적 약자 지원, 청소년 교육, 재난 구호 등에 쓰일 예정이다. 그는 빌 게이츠가 거액을 기부한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알 왈리드 왕자는 살만 국왕의 조카이자 세계적 투자회사 킹덤홀링스 회장으로, 일찍 개인 사업을 시작한 그를 ‘아라비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그는 ‘사람은 전성기에 아주 극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신원그룹 박 모 회장이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숨겨둔 채 허위로 개인 파산과 개인회생을 신청하여 270여억 원의 빚을 면제받은 사실이 탄로되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하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부자들에게만 재산을 환원하라 하지 말고 일반 사람들도 나서지 그러느냐 하면 할 말이 없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유일한의 유한양행은 38선 이북과 만주 및 중국에까지 진출하여 기업 활동을 펼쳤는데,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그 지역의 모든 상권을 일시에 잃고 말았다. 전체 자산의 80%에 이르렀다. 6·25 한국전쟁을 겪은 뒤 유한양행은 국내 최초로 항생물질 제품을 생산해냈고, 간유에서 비타민을 추출하여 정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일한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언에서 자신의 모든 주식을 학교재단에 넘기고, 딸에게는 묘지 주변 땅 5천 평을 주도록 했다.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면서 재산을 한푼도 남기지 않았다. 남은 것은 양복 두 벌과 구두 두 켤레뿐이었다. 그가 뿌린 씨앗은 오늘에 와서 송명근 교수의 재산 사회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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