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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아무도 슬프지 않은 정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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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아무도 슬프지 않은 정의는 없다
  • 전민일보
  • 승인 2015.01.06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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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록 칼럼니스트

 
진보와 보수는 기본적으로 시간과 변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둘 사이엔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시각과 그 가치 변화의 양태와 속도에 대한 근본적인 괴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둘은 때론 투쟁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사회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 된다. 적어도 그 사회가 건강하다면.

그런데 한국에서 이 두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의 근거는 세계사적 조류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고인돌’이 위치한 시대적 구분의 괴리를 보는 듯하다. 한국 고인돌은 신석기가 아닌 청동기 시대가 만든 소산이다. 고인돌과 현재의 그것에 차이가 있다면 발생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분단모순이다. 한국의 진보가 가진 딜레마는 여기서부터다.

독도에 해병대를 파견하라는 진보는 의심할 수 없는 진정성과 애국심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어색하다. 그렇다고 보수가 당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표는 여전하다.

보수는 건강해야하는데 과연 한국 근현대사에서 보수를 자처하면서 건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친일과 독재의 망령이 한국 보수에겐 족쇄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진보와 보수는 한국사회를 이끄는 부정할 수 없는 동력이다. 이제 하나의 사안으로 문제를 좁혀보자. 사형문제에 관한 의제에서 진보가 취하는 입장은 명확하다. 그렇다면 보수의 입장은 어떤가. 이 부분에서 한국 보수는 일관성을 잃고 있다.

법과 사회정의 구현을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수 없다는 보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생명을 죽이고도 인터뷰를 통해 당당하게 ‘여자들 몸 간수 잘하라’고 훈수까지 했던 유영철은 국민의 세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잘 살고 있다. 그는 도색잡지를 주문하는 것은 물론 교도관 멱살을 잡고 행패까지 부리는 기개(?)마저 보여줬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유영철에게 남은 것은 형 집행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엽기적 살인마 오원춘은 시설이 잘 갖춰졌다는 외국인 전용 교도소에서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 역시 노역을 거부하는 투쟁(?)을 통해 자신이 결코 유영철과 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인권 선진국이다.

사형 폐지국이 아니지만 사형확정 범죄인에 대한 형 집행은 김영삼 정부 이후 전무하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이것은 과연 정의에 부합하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지 모르겠다. ‘사형제가 얼마나 반인권적인지 북한과 같은 체제를 봐라.’

하지만, 사형제 채택과 체제의 비민주성이 동질적이고 불가분의 관계에 있지는 않다. 그것은 마치 북한 체제가 가지고 있는 특정 가치를 확대포장 해 ‘지상낙원’으로 선전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적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공권력이 결코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할 수 없다.’, ‘정치범에 대한 악용 우려’, ‘오심 여지’, ‘야만적 응보주의’, ‘범죄인의 참회기회 제공 박탈’,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 피해구제기능과 무관’, ‘흉악범죄 예방효과 미미함’은 물론 ‘사형집행인의 인권문제’까지 사형제 폐지에 대한 논리는 너무도 다양하고 강력하다.

그럼에도 위에서 제시된 논리에 대한 반박 논리 또한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논리가 아니라 정의와 인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현 상황이 우리사회가 선택한 정의로움이라면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 상황이 납득할 수 있는 보수의 모습이라 할 수는 없다. 도그마에 대한 강박을 넘어설 수 있는 진보와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고된 형을 집행하는 보수가 본질에 부합한다. 공자(孔子)는 악행을 저지른 자의 아들인 중궁(仲弓)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우리 사회는 유영철의 아들을 보호해 줄 책임이 있다. 그 아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와 다르지 않은 논리로 유영철에게 선고된 죄 값은 치르게 하는 것이 맞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아무도 슬프지 않은 정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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