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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거짓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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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거짓말일지라도
  • 전민일보
  • 승인 2012.11.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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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Lance Edward Armstrong)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1999년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사람들은 '인간 승리'라는 찬사와 존경을 그에게 보냈다. 그런 그의 신화가 산산이 부서져 내리고 있다.
 미국반도핑기구(USADA)가 암스트롱의 도핑 혐의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기구는 암스트롱의 약물복용을 가장 교묘하게 꾸며진 거짓이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약물과 거짓으로 지어진 모래성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이 암스트롱에 대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거머쥔 7개 타이틀을 박탈하고 영구 제명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의 개인적 성과가 사라지는 것이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치자.
 황망한 것은 대중이다. 거짓 신화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류 드라마의 종영은 허탈과 불신만 남겨놓게 되었다.

 ‘당신은 정직(正直)합니까’라는 물음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평범한 인간은 정직을 지키기 위해 희생해야할 수많은 대가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뒤집어보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정직에 대해 보다 엄격한 검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정직은 민주국가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이다.
 다양한 이해와 의견을 조정해야하는 지도자의 거짓은 공동체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아이가 공부를 조금 못해도 정직하다면 그 아이는 미래 한국의 지도자가 될 필요조건은 갖춘 것이다.   


 정직은 때로 ‘보복’, ‘인간관계의 파탄’, ‘체면의 손상’, ‘왕따’ 그리고 수많은 ‘이익의 포기’를 수반한다. 닉슨(Richard Nixon)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게 된 것도 정직이 치러야할 대가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암스트롱은 닉슨에게서 배운 것이 없다. 하지만, 정직하기 힘든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개인의 도덕적 영역 너머에 있다.
그것은 단순하게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철학적 사유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칼을 든 무뢰배에게 쫒기는 사람이 당신을 찾아온다.
“저를 좀 숨겨주세요.” 얼마 후 뒤따라 들어온 괴한이 묻는다.
 “방금 들어온 녀석 어디 있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착한 거짓말’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이 살인을 막았다고 자부할 것이다.

 정직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의 거짓은 그것을 합리화하는 토대를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칸트(Immanuel Kant)는 이런 일반적인 사유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칼을 든 괴한에게도 정직해야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하얀 거짓말’ 조차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벽(Le Mur)]은 그런 칸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파블로는 프랑코(Francisco Franco)측 군인에게 잡혀 고문을 받게 된다. 같이 수감되어있던 동료의 총살소리를 들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직면한 그에게 파시스트는 회유와 협박을 한다. “반군 지도자 라몬의 거처를 얘기하면 살려주겠지만 끝내 거부한다면 총살당하게 될 것이다.” 번민을 거듭하던 파블로는 명예를 지키고 죽음을 맞이하기로 한다. 그는 죽기 전 파시스트를 조롱하기로 결심하고 동료의 거처를 엉뚱한 곳으로 얘기한다. 파시스트는 파블로의 말을 듣고 라몬을 체포하러간다. 얼마 후 돌아온 파시스트를 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파블로에게 의외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를 총살하지 않고 다시 재판받을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파시스트를 조롱하기 위해 거짓으로 얘기한 공동묘지에서 라몬이 체포된 것이다. 라몬이 은신처를 옮겼던 것이다.
 파블로가 거짓으로 얘기한 그곳으로.

 칸트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거짓말은 우리 삶의 인과관계를 왜곡 시킨다.”
그것이 비록 ‘착한 거짓말’일지라도.

 
 장상록 /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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