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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누나도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다 참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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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누나도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다 참아요"
  • 최승우
  • 승인 2006.11.15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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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두려운 작은 이웃들-<4>전주평화동 혜진-성진 남매

-10년전 사고로 부모 잃고 조모와 생활
-"큰 수술 할머니 무사히 퇴원하셨으면" 
-속내 깊은 13-15세 어느새 눈물글썽



전주시 평화동의 한 아파트.

중학교 1학년인 성진이(13·가명)는 오늘도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학원에 간 누나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온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TV를 보며 저녁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혼자서 누나를 기다려야한다.
할머니를 괴롭히던 몸속의 혹이 점점 커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시간이 지루할 법 하지만 13살 성진이는 학교 숙제며 집안 청소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10평이 갓 넘는 작은 아파트이지만 여기저기 쓸고 닦다보면 어느새 누나를 맞이할 시간이 된다.

“누나는 공부하느라고 힘들잖아요, 저는 남자고 대학교에 가려면 아직 시간도 많으니까 제가 집안일을 도와줘야죠.”
제법 의젓한 말투로 성진이가 말했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성진이는 할머니와 누나, 셋이서 살고 있다.
한창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이것저것 가지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을 법한 나이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할머니도 누나도 돈이 없잖아요, 괜히 제가 뭐 가지고 싶다고 그러면 속만 상하니까 그냥 아무 말 않고 참아요.”
이처럼 씩씩한 성진이지만 가슴 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는 소원이 있다.

병원에 입원하신 할머니가 무사히 완쾌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
할머니가 병원으로 옮겨진 후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 그리움과 걱정은 하루하루 커져가고 있다.
“누나가 ‘할머니는 엄마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할머니가 아프시니까 너무 걱정돼요, 빨리 나으셔서 다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훌륭한 의사가 돼서 할머니를 편히 모시고 싶다는 성진이가 자신의 꿈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 할 때 즈음, 누나 혜진(15)이가 돌아왔다.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생이 미안해서인지 손에는 붕어빵 두 개가 담긴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늦어서 미안해 성진아, 할머니랑 전화했니?, 숙제는 다 했어?”

학교수업에 학원 공부까지 마치고 돌아온 혜진이는 잠시도 쉴 틈 없이 성진이의 가정생활을 꼼꼼히 챙겼다.
“저희는 부모님이 안 계시잖아요, 괜히 다른 사람들한테 나쁜 소리 들으면 기분 나쁘니까 서로 알아서 잘해야죠.”
동생의 숙제검사를 마친 혜진이는 성진이가 벗어놓은 교복 셔츠를 세탁했다.

‘전기세가 아깝다’며 손빨래를 하는 혜진이는 유난히 빨래에 신경을 많이 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새 옷을 살 수는 없지만 학원에 갈 때면 매일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고 다닌다.
“애들한테 ‘왕따’당하지 않으려면 깔끔하게 하고 다녀야 돼요, 지저분한 옷 입고 학교나 학원가면 괜히 무시당하고 놀리고 그러니까...”

빨래를 마친 혜진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오후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혜진이는 ‘선생님’이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참고서를 펼쳤다.
동생 성진이는 ‘공부 좀 더하고 자라’는 누나의 잔소리가 싫은 듯 슬그머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혜진이는 동생이 잠이 든 것을 보고 “저희가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할머니도 빨리 나으시겠죠?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이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유난히 바람이 차가웠던 14일 밤, 하늘에 뜬 밝은 달은 혜진이네 집을 비추며 웃고 있었다. 최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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