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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몸도 버거운 칠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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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몸도 버거운 칠순인데
  • 최승우
  • 승인 2006.11.13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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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두려운 작은 이웃들-<2>남고산 산동네 문현식 옹

-정신장애-뇌질환 앓는 40대 남매 돌보며 생계 책임
-한달 60만원 정부보조금으로 약값-병원비에 생활비까지
-영하추위에도 난방 엄두 못내 "소화 안돼서..." 밥상도 양보



상쾌한 공기와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이곳 남고산 중턱에 옹기종기 터를 잡고 있는 산동네가 있다.
20여 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를 잡아 살고 있는 문현식(74)씨도 이 산동네 식구 중 하나다.

가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여는 70대 할아버지와는 달리 문씨는 마흔이 넘은 아들과 딸을 보살피며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정신지체 1급 장애를 앓고 있는 딸 은영씨(42)와 지난해 겨울 머리를 다쳐 몇 차례나 뇌수술을 받아야 했던 큰아들 희준(45)씨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씨는 힘든 내색은커녕 자식들 걱정으로 하루하루 메말라 가고 있다.
“자식 키우는 일이 부모의 마땅한 도리인데 힘들긴 뭐가 힘들어, 형편이 마땅치 않아서 병원에 자주 못 보내는 게 한이지.”
문씨는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는 이웃들에게 “늙은이가 여기저기 아픈 것을 당연하지만 아직 젊은 내 자식들이 아파서야 되겠느냐”고 되묻곤 한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빨래부터 설거지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만 하는 문씨.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며 살았던 문씨에게 아내와의 사별은 가시밭길 같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중풍으로 제대로 거동도 하지 못한 채 온갖 고생을 겪으며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받아들일 수 없는 큰 슬픔이었지만 문씨는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딸을 보살피며 꿋꿋이 살아갔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문씨가 마음의 안정을 찾을 무렵 큰아들 희준 씨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은 빚을 진 희준 씨는 채권자들을 피해 문씨의 곁으로 돌아와 지내다 지난해 겨울 마을 뒷산에서 사고를 당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희준 씨는 3차례가 넘는 뇌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씨에게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는 산중의 바람은 무시하지 못할 걱정거리 중 하나다.
60여만원 겨우 남짓한 정부보조금으로 자녀들 약값과 병원비를 충당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겨울철 난방비는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다.

“겨울이라고 해서 보조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를 쪼개서 기름을 때야 하는데 방법이 없잖아, 그냥 먹는데 쓰는 돈을 좀 아껴서 기름을 사는 수밖에.”

이 같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요즘처럼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문씨는 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한다.
“아직 얼어 죽을 정도로 추운 것은 아니니까 더 아껴야지, 정 추워서 못 견디겠다 싶으면 그 때나 한 두 시간 정도 보일러를 켜도 괜찮아.”   

문씨는 차가운 골방에 앉아있는 자식들에게 밥상을 챙겨다주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기름 값 몇 천원 때문에 죽고 살고 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정말이지 요즘 같은 때면 겨울이 너무나 싫어”라고 토로했다.
밥상을 받은 큰 아들 희준씨가 함께 밥을 먹자고 청하자 문씨는 한사코 뿌리치며 “소화가 잘 안돼서 밥맛이 없으니까 먼저들 먹어”라고 말했다.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짓는 문씨의 볼이 유난히 더 깊이 패여 보였다. 최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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