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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해결, 국가가 적극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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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해결, 국가가 적극 나서야
  • 전민일보
  • 승인 2023.05.1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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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억새가 무리 지어도 외롭듯이, 사람의 발길이 끊긴 외딴 폐가에 홀로 핀 개망초꽃이 퇴락해져 가는 집을 안타까워하고 외로움에 지쳐 울고 있다. 하물며 외진 산사 절벽에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홀로 자라온 소나무는 얼마나 외로울까.

전 인류의 보편적 감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많은 일에 치어 살고 있는 현대인은 외롭다. 열심히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데도 마음은 늘 외롭다. 하지만 사는 일에 더러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때로는 정신적 물질적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싶은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간혹 하는 일이나, 삶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누가 나의 삶을 보상해 줄 것인가? 꼭 이렇게밖에 살 수 없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외로운가? 나만 불행하지는 않은가 등.

기혼이든 미혼이든, 가족이 있든 없든 때론 혼자라는 느낌이 드는 날엔 괜히 눈물이 난다. 쓸데없는 잡생각이라고 외면해 보지만, 허한 가슴으로 파고드는 묘한 감정을 무시하기에는 너무 선명하다. 이런 게 외로움인가.

눈을 바깥세상으로 돌리면 세상은 하루게 다르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등이 다른 생각은 끼어들 틈 없게 촘촘한 차단막을 친다. 하루 중 심심할 시간은 찾기 힘들다. 돈과 시간만 있으면 놀거리, 볼거리는 널렸다. 특히 스마트폰을 열면 별의별 정보가 넘쳐나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회는 갈수록 더 풍요롭고 행복해 보이는데, 외로운 사람들이 늘어난다니 이것이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대체 이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외로움은 살아 있는 내 몸에서 나온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그러나 외로움은 본능이다.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외로움과 함께 한다. 만약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상이 아니다. 다만 외로움이 길어지면 우울증이 오고 신체적으로도 질병이 생길 수 있어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외로움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많은 국가가 이를 공공보건의 중요한 의제로 다루면서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하고 사회체육부장관 겸직으로 임명했다. 외로움을 국가 차원에서 대응할 정책 의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급증하면서 2021년 2월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국가의 책임 아래 고독에 방치된 사람들을 본격 지원하겠다는 의지다. 고립감과 외로움의 경험이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쉽사리 전이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도 외롭다. 작년 4월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87.7%가 ‘사회 전반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답했다. 조사는 지난해 4월 27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9~59세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한국인들은 모두 자신이 속한 연령대가 외롭다고 했다. 외로움이 노인 등 특정 세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특히 20·30대와 1인 가구는 10명 중 6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처럼 한국인들의 외로움은 심각한 수준이다. 외로움은 사회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사회적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외로움 문제에 근본적으로 대응하려면 범부처 차원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즉 빠른 시일내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외로움방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들에게 닥치는 외로움, 우울, 불안 같은 정동과 자살, 1인 가구화, 고독사 같은 사회적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치학자는 외로움이 민주주의의 위기와 연관된다고 논한 바 있다. ‘자기 책임’과 ‘각자도생’만이 지배하는 황량하고 외로운 세상에서, 약자·소수자를 무임승차자로 지목하는 차별과 혐오가 횡행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국가가 되었다. 비혼과 1인가구가 늘고 있고, ‘혼삶’, ‘혼밥’, ‘혼술’, 혼놀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외로움, 고독, 자살, 고독사, 무연고사 등이 전 연령대에 퍼져 있다. 이러한 피해는 개인의 삶에나 공동체 자체에 전방위적이고 파괴적일 것이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외로움 해결에 나서야 한다.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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