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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訓蒙齋)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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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訓蒙齋)의 봄
  • 전민일보
  • 승인 2023.04.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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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훈몽재(訓蒙齋)에 다녀왔다. 어릴 적 좋아했던 계절은 가을이었지만 나이와 더불어 봄이 좋다. 생명의 기운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그 아름다움. 훈몽재에도 봄이 가득했다.

훈몽재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선생이 순창 쌍치에 세운 초당 이름에서 기원한다.

김인후는 잘 알려진 바대로 호남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문묘(文廟)에 배향된 동방 18현 중 한 분이다. 조선에서 문묘는 판테온과 같은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곳에 배향된다는 의미는 아주 특별하다. 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성현의 공간.

김인후는 인종(仁宗)의 스승이었다. 묘호 그대로 어진 임금이었던 인종은 불과 8개월을 재위하고 세상을 떠난다. 김인후가 낙향을 선택한 것도 인종의 죽음 때문 이었다. 후일 김인후는 자신의 공직생활을 비문에 남길 때 인종이 제수한 옥과현감 만을 기록하게 한다. 정조(正祖)는 김인후를 문묘에 배향시키면서 그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사모의 정을 밝힌다.

또한 사대부들에게도 김인후는 이황과 더불어 당파에 상관없이 존경받는 몇 안 되는 성현이었다.

오늘 문묘의 의미는 조선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조선 성리학이 가진 여러 한계점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성리학은 봉건 신분제를 옹호하고 남녀와 적서를 구분하며 중화주의의 미몽에 사로잡혀 결국 망국에 이르게 한 원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 영향은 아직까지도 한국사회 구석구석에 잔존해있다.

동방의 주자(朱子)로 불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도 사람에 따라선 수백 명의 노비를 거느린 봉건지주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 어떤 과거도 현재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그 현재는 미래를 맞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모든 역사적 사실은 오늘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단순히 오늘 시선에 맞춰 해석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늘 우리는 윤봉길 의사를 찬양하지만 당대 조선 사람 모두가 그에게 호의적이진 않았다.

생각해볼 것은 윤봉길 의거를 비판적으로 생각한 사람 모두가 친일민족반역자여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태어난 사람이 지난 과거사를 살피면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불편한 진실 하나는 현시점 독립운동을 말하는 분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상당수가 그들 기준에 의하면 친일민족반역자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오늘의 기준에 맞춰 해석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던 그 시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일유재(一遊齋) 장태수(張泰秀) 선생과 일송(一松) 장현식(張鉉植) 선생이 일제 침략에 맞서 보여준 숭고한 위국헌신에 나는 감사와 더불어 후손으로서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한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그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과 오늘을 사는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과 고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조선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전제다.

사족이지만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도 김인후의 후손이다.

세 번 째 방문한 훈몽재는 예전의 모습과 같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모습으로 날 반겼다.

고인돌 주위를 장식한 붉은 꽃과 지난 가을의 낙엽을 잔뜩 간직한 연못엔 생명이 반가운 손짓을 한다. 입구에 있는 삼연정(三然亭) 앞쪽으로는 천변을 따라 선비의 길이 보인다.

그 전엔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이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걸었을 그길을 나도 따라 걸어보았다.

물소리와 더불어 녹음과 꽃향 그리고 나비의 춤사위와 새의 노래가 그길을 같이 한다.

아름답다는 타국 정경을 적잖게 봤지만 봄날 걸은 훈몽재 선비의 길만은 못하다.

선비의 길 끝에 사과정(麝過亭)이 반긴다. 너무도 적절한 정자의 이름이 아닌가.

사과춘산초자향(麝過春山草自香) 사향노루가 봄 산을 지나가니 풀숲에서 향기가 절로 난다.

지친 심신을 치유해준 훈몽재의 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

장상록 컬럼리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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