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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 39년 , 소통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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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 39년 , 소통의 시작
  • 전민일보
  • 승인 2023.03.16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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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는 통역사가 되고 싶었다. 농인들이 대화를 거부하는 뜻으로 상대방의 수어를 안 보려고 눈을 감는 일이 없도록 서로 허물없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생각하기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기는 참 어렵다.

그러나 어렵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은 날들이 될 수 있도록 한발 한발 내디뎌보자 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수어통역, 음성통역 등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는데 과연 통역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농인들은 통역사들에게 수어, 음성통역의 달인! 서비스의 달인! 농인문화를 이해하는 달인! 행정업무의 달인! 회계업무의 달인! 예산전문의 달인! 문제해결의 달인! 이 되어주기를 원하지만 진정한 달인(達人)이 될 수 없음을 알기에 한참의 세월을 현장에서 통역하면서 어디까지를 통역의 범주에 넣어야하는지 고민을 가끔하곤 한다.

농인은 세계 어느 지역 또 어느 시대에서나 사회 구성원이 아닌 적이 없다.

단, 청인들이 농인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농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혹여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장애로 인하여 인간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 기회 및 인간적 품위를 손상 받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며, 농인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자세는 비인격적 자세이니 절대 가져서는 안 되고, 다만, 청인과의 관계에서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청인과 똑같은 정보를 얻는데 다소 늦음이 있으니 불편 없이 생활하도록 도움을 주기를 바랄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불어 사는 사회”이니만큼 이젠 농인들의 언어인 수어와 농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관심을 좀 더 많이 가져야겠다.

사실은 친동생의 장애가 못내 부끄러워서 동생을 무시하고 부끄러워했던 사춘기 시절 나의 행동이 빚진 마음으로 남아 그 빚진 걸 갚기 위해 현장에서 지금도 이렇게 뛰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이나 밤늦은 시간에 혹은 휴일 쉬는 날에 농인의 통역의뢰를 받으면 “힘들다, 귀찮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가기를 39년째... 이는 “농인들과 수어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현장에서의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농인들을 향한 나의 사랑은 “소통이라는 수어”로 계속 될 것이다.

최현숙 수어통역사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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