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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오 시인 첫 시집 '빛의 체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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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오 시인 첫 시집 '빛의 체인' 출간
  • 김영무 기자
  • 승인 2023.02.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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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전수오 시인의 첫 시집 '빛의 체인'이 출간됐다. 시인이 설치미술가로 활동할 당시 “나의 작업들은 물질적·정신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초극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새”라고 남긴 말처럼, 세계를 바라보는 전수오의 시선은 새의 감각을 닮았다. 미세한 틈부터 광활한 대지까지 곳곳에 흩어진 작은 존재들을 정확히 포착하는 새의 감각으로 시인이 들여다보는 것은 인간의 상상으로 재현된 가상의 세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간의 상상이 초래한 현실의 폐허들이다.

시인은 우주와 자연, 설계자인 인간 자신까지도 속속들이 모방해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점점 손쓸 수 없도록 번져 가는 현실의 폐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 대답을 만들어 내는 챗봇(「안녕, 로렌」), 세상의 질서에 의문을 품는 게임 속 식물(「원예 게임」)처럼, 시인은 인간이 만들어 낸 피조물들에게 이미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해 우리에게 보여 준다. 영혼은 몸에서 몸으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빛처럼 만물에 스미는 것이다. 시인은 설계자와 피조물,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혼의 궤적을 따라 빛의 체인을 그린다. “빛과 어둠 사이의 커튼이 점점 야위어 가고”(「초능력」) 실재와 헛것이 뒤엉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춤을 추는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빛의 체인은 첫 시 '환기구'의 작은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빛은 너무도 미약해서, 어둠을 물리치는 대신 어둠이 ‘어떤 어둠’인지를 더 잘 보여 준다. 빛은 상자 속, 창이 없는 방, 야생의 밤, 깊은 산속, 열매의 내면, 굳게 다문 입안을 희미하게 비추며 어둠이 저마다 내밀한 이야기를 품은 각각의 장소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마주하게 한다. 그들은 숨어 움직이는 동물, 음지식물, 유령, 꿈, 비밀, 과거의 기억처럼 환한 빛에 의해 선명해지기보다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소유정 문학평론가의 표현처럼 이들은 인간이 무분별한 문명이라는 환한 빛을 좇아 세계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가장 먼저 뭉개고 잊은 존재들로, 전수오의 시는 이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계의 뒤란”이 된다. 암실에서만 자신이 품은 빛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아날로그 필름처럼, 이들은 전수오의 시를 통해 자신이 품었던 찰나의 삶과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 보인다. 잊힌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는 “이곳의 입구를 통과하면 이름이 지워”(「얼음 아기」)지고, 우리는 이름 없이 평등한 존재가 된다. 미약한 빚 아래에서 높낮이 없이 겹쳐지는 그림자가 된 “우리는 평평한 슬픔을 공유”(「열매의 모국」)한다. 이들의 삶은 이제 하나의 삶으로 끝나지 않고, 시와 시를 건너며 새로운 몸과 껍질을 통과해 무수한 삶으로 변전하며 “외롭고 신비한 환생 극장”(신해욱 시인)을 펼쳐 보인다.김영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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