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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비수(匕首)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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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비수(匕首) 사이
  • 전민일보
  • 승인 2023.01.11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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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반드시 노화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젊음의 강렬한 열정에 보지 못한 세상을 조금은 옅은 대기를 통해 볼 수 있기도 하고 욕심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되며 타인과 자신에게 타협 가능한 너그러움을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찬양의 대상인가에는 사람에 따라 의문이 따른다. 때로 그것은 꼰대나 보수화(?)라는 이름으로 폄하되기도 한다. 그래서 떠올려보는 것이 항상심이다.

세상에 보편타당한 가치가 있다면 한 개인에게도 마땅히 일생을 관통하는 항상심은 있어야 한다. 가치관의 변화에 맞서 중심을 잃지 않고 굳건한 그 마음은 과연 무엇인가?

좌우를 대표(?)하는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와 <가로세로연구소>는 사회를 보는 시각이 극단저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닮은 점이 있다. 한때는 동지적 유대로 정의를 논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던 구성원들이 이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서로를 향해 비수를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그 칼의 예리함은 그들이 사회의 공적(公敵)으로 얘기하던 그 대상을 향한 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상대 인격체를 난자하는 그곳엔 그 유혈을 포장할 수 있는 그 어떤 고상한 수사(修辭)나 미학(美學)이 자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이 한때 정겹게 서로 웃으면서 거론한 거대 담론들은 서로를 향한 인신공격과 조롱 속에 녹아버렸다. 그들이 보여준 관계성은 모호하고 위태롭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확실하고 견고하게 보일수록 그 후폭풍은 더 거세다.

좌우의 극단에서 사회를 바라보며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던 그들은 이제 그들 사이에서 또 다른 분열을 맞이했지만 그 분열된 자아들조차 여전히 사회를 향한 외침을 계속 던지고 있다.

만신창이가 된 그들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있을까? 그들은 분명 거부할 것이다.

양비론과 양시론 모두 정의와 진실에 반한다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의 본질은 아무리 포장하려해도 공적 영역이라 할 수 없다. 돈과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이전투구를 공적인 영역에 투사하려는 현란한 수사(修辭)는 그 자체로 사회적 피로를 더하기에 충분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의 해석을 새롭게 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도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다. 엄혹한 시절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과 가정을 희생해야 했던 대상에게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너무도 가혹한 이데올로기적 사슬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에서 그 의미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정에 충실한 시민적 가치와 자질이야말로 공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필요한 선결적 자질이어야 한다. 그러한 기본이 실종된 채 거대 담론에 매몰된 공인의 출현은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이다.

공적인 삶의 기본은 자신의 희생에 기반 한다. 오늘 찾아오는 신뢰의 위기 상당부분은 그런 기본전제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한다. 정의와 진실을 내세우면서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 거의 대부분은 수천년 전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고민과 다르지 않다.

하물며 불과 수백년 전 이 땅에서 살다간 사람들과 비교하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을 보며 남긴 말에도 오늘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단지 서로 뛰어난 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각자의 의견이 부딪쳐 (서로의 사이가) 진나라 · 월나라처럼 소원해지고 단지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른 것뿐인데 명분을 비교하고 따지다 보니 그 차이가 화이(華夷)의 구분보다 더 혹독해졌다.”

오늘 진보와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은 놀랍게도 조선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과 북인이 행했던 그것과 닮아있다. 그 중앙은 회색지대가 되고 만다.

진리는 의견과 의견 사이에 있다는 말이 현실에서는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웃으며 나눈 얘기가 어느 날 녹취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언제든지 나락으로 인도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이 후대에 남길 징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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