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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학교 담벼락에 꿈과 희망으로 가득 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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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학교 담벼락에 꿈과 희망으로 가득 채웠어요"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2.09.28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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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컸던 시골학교서의 첫 벽화
말 할수 없는 재미와 자신감 얻어
벽화의 완성은 주변 구조물과의 조화
좁고 후미진 곳일수록 벽화 위력 커져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할 때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도 우리는 벽에 무언가를 그려온 이들의 후손이다.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부족의 안녕(安寧)을 빌기 위해, 본 적 없는 상상속 무언가를 떠받들기 위해 끊임없이 그려온 인류는 지금도 벽화라는 장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북의 학교 담벼락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마을엔 안전지대를 그려내는 유해림 작가도 벽화를 이어온 후손 중 하나일 것이다.

온 몸에 담이 오고, 독한 페인트에 머리가 멍해져도 그림 그리는 그 순간의 희열이 좋아 오늘도 붓을 잡는 유해림 작가(55)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주

다정했던 아버지는 김제시청의 녹지과장을 지내며 도롯가 꽃 한포기도 허투루 대하지 않으셨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시의 미관과 잘 어울리는 나무와 꽃 등을 심으며 시내를 아름답게 가꾸셨다. 

그 피가 어디갈까. 유 작가 역시 아름다운 것에 쉽게 매혹됐다. 아름답게 하는 일엔 요즘 말로 '진심' 이었다. 

다재다능한 성격 덕에 대학교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다.

순수미술과는 달리 시각/공업이 모두 접목된 분야였지만, 틀에 박힌듯 여자들은 부전공으로 염색과 직조를, 남자들은 공업분야를 선택해 최종적으로는 광고회사 등에서 다시 만났다.

회사원으로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삶이 더 끌려 도립미술관 아뜨리에에서 미술수업을 하며 경력을 쌓아왔단다.

그러던 어느날 시골 초등학교에서 미술수업을 요청해왔다. 그 요청이 유 작가의 삶을 예상치 못한 길로 이끌었다.

"작은 미술관을 만들자는 요청에 이것저것 시도했죠. 그러다 학교에서 빈 벽에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어요."

설렜느냐는 질문에 두려움이 더 컸다고 대답한 유 작가는 벽화 하나를 잘못 그렸을 때 단순히 그림이 별로다를 넘어 그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고 그린 첫 벽화에서 말할 수 없는 재미를 느꼈다.

"그려놓고 나니 내가 이걸 해냈다는 생각과 함께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부턴 입소문을 타서 교장선생님들의 추천으로 계속 학교 벽에 그림을 그려왔어요."

어느덧 벽화만 8년째 그리고 있는 유 작가는 이제 학교만 가도 그 벽에 뭘 그려야 할지가 눈에 먼저 선하단다.

학교가 이어온 역사와 이야기거리들이 빈 벽에서 꿈틀대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지 않고는 못배길 정도가 됐다.

벽 상태와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유 작가가 벽화 하나를 완성하는데 드는 시간은 21일 정도다.

압도적인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인 만큼 그리다가도 몇번이도 멀찍이 떨어져서 균형을 맞춰가며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벽화그리기는 통상 교육청의 예산 한도내에서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돈만 본다면 덩그런 벽에 그림만 그려줘도 누가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유 작가는 그럴 수가 없더란다. 벽화의 완성은 결국 주변 건물이나 구조물과의 조화에서 방점이 찍힌다는 것이 유 작가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냥 벽화 앞에 놓인 기둥에 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그 일대 공간이 확 살아나는 걸 경험하면 대충대충 그리고 말아야지가 잘 안돼요."

그렇게 쌓이고 쌓인 포트폴리오는 수백장에 달한다. 찾아간 학교도 셀 수가 없다. 삭막하고 우중충했던 벽은 유 작가의 붓이 지나갈 때마다 아예 다른 세상이 된다.

모든 벽화가 사랑받지만 최근 완성한 전주 화정초등학교 벽화는 유달리 기분이 좋았단다.

올망졸망 귀여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학교를 드나들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숨찰까 싶어 모두들 마스크를 벗고 하하호호 웃는 모습으로 그렸다. 

"그리고 나서도 뿌듯했지만, 특히 학기 초에 병아리같은 1학년 학생들이 엄마 손을 붙잡고 학교를 오다 제가 그린 벽화 앞에서 엄마와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스크 없이 그린 아이들 얼굴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더라구요."

매사에 당당하고 자신이 그린 알록달록한 색감처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유 작가이지만, 그래도 마음한켠엔 '내가 작가라고 불려도 되나'하는 의구심이 마음이 약해질때마다 피어올랐다.

개인전을 열 수도, 작품을 소장할 수도 없는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작가라고 불리는게 맞는지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완전히 깨뜨려 준 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바라봐 준 사람들이었다. 

전시기간에 제한도 없고, 관중은 매번 바뀌고, 전시 장소에 제한도 없는 무한한 작품을 만든 사람이 작가가 아니면 뭐냐는 말은 지금까지도 벽화를 그리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벽화는 다른 그림에 비해 육체적 강도가 매우 센 편이어서 온 몸에 담이 오는 일은 부지기수다.

벽의 재질에 따라 사용해야 하는 페인트의 성격도 다른데, 시너를 섞어 써야 하는 유성 페인트를 쓸 때면 속까지 미슥거릴 때도 있다.

그런 힘든일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결국 할 수 있는 답변은 "그냥 하고 나면 다 잊을 만큼 좋으니까" 뿐이었다.

"말그대로 온 몸이 아파요. 사서 고생한단 소리도 정말 많이 들었구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단 붓을 잡으면 아픈지도 모르고 슥슥 그리게 돼요. 다 완성하고서야 여기저기 아프다는 걸 깨닫는 절 보면 이게 천직이구나 싶어요."

자신이 하는 일에 심드렁했던 두 딸이 몇달간 같이 벽화그리는 데 따라나선 이후, 자신의 고생을 온몸으로 함께 공유하며 더없는 지원군이 돼 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하는 유 작가의 다음 꿈은 여전히 벽화의 색감처럼 뚜렷하다.

"좁고 어둡고 후미진 곳일수록 벽화의 위력은 커져요. 그 벽화가 있는것 만으로도 어두웠던 아이들의 마음이 펴지고, 으슥했던 마을 분위기가 톤이 바뀔 정도로 밝아지죠. 내가 그리는 이 그림이 세상을 밝게 해주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일을 더 해야하는 당위성이 되는 것 같아요."

힘들게 그린 벽화를 번 돈으로 가족들과, 이웃들과 함께 나눔의 기쁨을 누리는 재미가 너무 크다는 유해림 작가의 다음 벽화는 또 어떤 빛깔로 세상을 비출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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