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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청년들이 앞장서는 문화순환도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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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청년들이 앞장서는 문화순환도시를 꿈꾼다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2.08.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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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한 부족의 속담 중엔 '노인이 죽는 것은 박물관이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노인이 평생의 삶을 일구며 켜켜이 쌓아온 지혜와 경험이 소중하다는 뜻일테지만, 작금의 현대사회에선 노동력 측면에서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시된지 오래다.

어른들을 존경하는 청년들은 점점 줄어들고, 청년들과 노인들의 접점은 점점 좁아지고만 있다.

유달리 먹고 살기도 빠듯한 전북에서 노인들의 경험을 알아봐주는 이는 그래서 더 귀할 수 밖에 없다.

이 귀한 일을 문화와 접목시켜 지역 골목과 상생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있다. 전주의 문화를 만방에 알리고 싶어 조선시대 외교특사였던 조선통신사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문화통신사 협동조합'이 그 주인공이다. / 편집자주 

기린토월에서 문화를 알리고 있는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싹싹하고 낭랑한 인사를 건네는 김지훈(40) 문화통신사 협동조합 대표는 2017년부터 전주시 남노송동에서 문화통신사의 싹을 틔운 장본인이다.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예술공연정보를 통합해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한편,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지원해 사람과 공간의 창조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목표로 쉼없이 달려온 그는 어느덧 6년차 문화기획자로 입지를 든든히 다지고 있다.

마음을 맞추며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밀물과 썰물처럼 바뀌기를 반복하며 이제는 13명 정도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문화통신사가 베이스캠프로 삼고 있는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은 50년 전만 해도 골목마다 사람들의 웃음과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주거지역 이었다.

하지만 반세기 만에 고령인구과 주택비율이 전주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인 구도심이 됐다.

걸어서 10분 거리엔 연간 1000만명이 찾는다는 한옥마을이 있지만 그곳의 뜨거운 인파와 살벌한 임대료는 남노송동까지 다다르진 못했다.

한국음악 중 대금 연주자였던 김 대표는 지역에서도 분명 신나는 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단다.

전주가 고향은 아니지만, 문화적 자산이 많고 음악 활동을 하며 다양한 전주 청년들과 어울리다보니 여기에서도 충분히 재밋는 일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김 대표는 남노송동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에 천착했다.

"지금 전북도와 함께 청년마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이럴 계획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삶과 지혜가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까웠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지혜가 필요한 제 또래 청년들과의 교두보를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죠."

정부와 각 지자체 행정 정책에서 언제나 최우선 순위는 청년이자 노동력이 남아있는 중년층에 국한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아쉬웠다는 김 대표는 어르신들이 복지의 수혜자로 남기 보단 이들도 여전히 하고싶은 것이 많고 보여줄 것이 많은 존재로 기억되길 원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기반조건이 너무 비싸거나 거창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모두를 만족시킨 곳을 찾다보니 남노송동에 발길을 멈추게 됐다고.

협동조합이 위치한 기린토월은 샛노란 외벽이 눈길을 사로잡는, 남노송동에서도 손꼽히는 큰 건물이다.

4~50년 전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을 자처했던 이곳의 정체는 목욕탕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고, 그곳을 싸게 사들여 again 사랑방이자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1층 카페는 목욕탕에 붙어있던 타일과 '물 아껴쓰세요' 안내판, 그리고 목욕탕 매점에서 쓰던 가격표도 그대로 살려 감성 넘치는 지역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나머지 공간엔 지역민들과 함께 즐기는 전시공간 등으로 촘촘히 채워넣었다. 목욕탕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어떤 분은 환하게 바뀐 목욕탕을 보며 이런 공간으로 남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원도심의 건물들을 다 철거하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자체가 기록이자 기억인데 이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재생시켜 지역민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서노송동의 어른들은 협동조합 운영에 있어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울림이 가득하단다.

"어르신들에게 배우는게 정말 많아요. 한평생 봉사로 생을 채워오신 어느 할머니가 가장 후회되는 일이 '솥단지가 작아 밥을 양껏 나누지 못한 것'이라는 말 앞에 어떻게 경건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에게 밥을 챙겨 먹여 돌려보내놓고도 또 도둑이 오면 밥 한번 더 차려주면 된다는 어른들의 사랑을 저희만 알고 있기엔 아깝더라구요."

사람들이 떠나고 낡아서 비어버린 공간들을 청년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어른들의 그림과 글로 채워넣기도 했다.

약국이 떠난 자리엔 아픈 마음을 처방해 줄 어른들의 글이 담겨있고, 아이스크림 마트가 비운 자리엔 아이스크림 색깔처럼 고운 그림들이 즐비하다.

믹스커피를 잘 타는 어르신에겐 '믹스커피 장인'을, 뭐든 퍼주기 좋아하는 정 많은 어르신에겐 '퍼주기 장인'을, 얘기를 하다 보면 어디선가 뿅 나타나 삶의 지혜를 보따리 채 풀어놓은 어르신에겐 '간섭 장인'이란 유쾌한 별명도 이곳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어른들의 이런 이야기 자체가 인문학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있다는 점을 더 많은 지역 청년들이 깨달았으면 했다는 김 대표는 이것을 청년들이 직접 어른들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어른들의 일손을 돕는 것을 계량화 해보는 시도를 감행했다.

'시간마을'과 '시간은행'이 그 결실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을텐데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청년들이 수도권으로만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적어도 청년들이 전주 이상을 벗어나지 않고도 충분히 재밋는 일을 찾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이곳의 경험을 재해석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마을을 만들게 됐습니다."

시간마을인 남노송동에선 청년들이 어르신들을 돕거나, 말벗을 해주는 등의 봉사를 하게 되면 '품'을 통장에 쌓아준다.

가령, 어르신 마당의 잡초를 뽑아주고 1시간에 '1000품'을 받은 청년은 동네 슈퍼에서 1000품 만큼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일종의 마일리지인 셈이다. 

지역의 자원과 청년의 자원을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로 공유를 해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지역살이 실험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돼 전북도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진행해보고 있다.

"청년마을 사업을 진행할 때 '우리가 하는게 정말 청년마을일까?' 하는 욕심을 버리고 정말로 지역 청년들이 함께하는 마을을 실험해보자는 데 의의를 뒀습니다. 타 지역 청년들에게도 이런 경험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자신들의 활동이 가치가 있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해 나가기 위해 지금도 머리를 맞대 회의와 토론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는 김 대표와 소속 활동가들은 '좋은 일'을 숫자가 아닌 언어로 해석해 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포부다. 

"동네의 골목을 청소한 일, 꽃을 심는 일, 어른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는 일이 단순히 좋은일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의 역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 차별성을 구축해 나가는 일이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구요."

지역을 지켜온 어른들, 그리고 건물들, 그 안에서 지역에서만 나눌 수 있는 담론과 문화를 전파하는 문화통신사 협동조합이 전달 다음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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