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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비트코인을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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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과 비트코인을 사랑한 남자
  • 전민일보
  • 승인 2022.06.2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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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과의 인연은 시대를 넘어서 이어져 온 듯하다. 과거를 비추는 주술사의 구슬 속에 내게 튤립 한 송이를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 순간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흰색 바탕에 진홍색 줄무늬를 가진 튤립이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이 세상은 나의 것이었다.

‘영원한 황제’라는 의미의 ‘센페이 아우구스투스(Semper Augustus)’ 튤립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고귀한 신분의 부유한 집안 출신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나의 조국 네덜란드는 튤립 투기 열풍에 빠져 들었다. 중계 무역상들이 터키에서 들여온 튤립은 ‘사랑의 고백’이라는 꽃말처럼 구애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노동자 평균 연봉이 200~400길더 수준이던 1736년, 최고 등급의 튤립 알뿌리 1개 가격은 3,000길더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해상 중계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고, 축적한 부로 튤립을 샀으며, 누구나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귀공자인 그가 거짓말처럼 내 앞에 나타났고 그는 나를 구름 위 천상의 세계로 데려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거품’이 꺼졌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튤립 알뿌리 가격은 집 여러 채 값과 맞먹는 정도였으나,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이 한순간에 터져 버리듯 그 가치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집과 땅을 팔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가지고 있으면 영원한 부를 안겨줄 것 같았던 튤립이 한낱 한 송이의 꽃이 되고 말았다.

사실 꽃은 꽃 그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정부의 개입으로 튤립은 원래의 자리인 꽃으로 돌아왔지만,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욕심의 거품이 꺼지며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진실한 사람이었고 나는 튤립의 소유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를 받아들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비트코인에 빠져 있다. 허황한 욕망을 따라서 영혼까지 내어줄 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문득, 그에게서 300년 전 내게 ‘센페이 아우구스투스’를 건네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쩌면 우리는 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흰색 바탕에 진홍색 줄무늬,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희귀한 튤립은 사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결과로, ‘튤립브레이킹바이러스(TBV)’가 튤립꽃에 이상 증상인 줄무늬를 만든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당시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희소성만으로 튤립의 가치를 매겼고 인간의 욕심이 덧씌워지면서 헛된 광풍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1892년 러시아의 과학자‘이바노프스키’가 ‘미지의 무엇’인가가 담배에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당시에 알려진 가장 작은 생명체인 세균보다 작은 미지의 무엇인가는 1898년 네덜란드의 ‘베이에린크’에 의해 ‘독’이라는 의미의 ‘비루스(Vius)’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35년 미국의 ‘스탠리’는 ‘비루스’의 정체를 밝혔고 그는 이 공로로 1946년 노벨상을 받았다.

바이러스는 참으로 기묘한 존재이다. 생물체인지, 아닌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통상적인 생물체의 개념과 너무나도 다르다.

생명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유전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물질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복제와 증식 등 생물체의 기본적인 활동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오늘날 바이러스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류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된 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종의 바이러스가 인간과 동물을 공격하며,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식물 바이러스도 알려진 것만 수천 종에 이른다.

인간이 바이러스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더 클지 모른다. 컴퓨터를 공격하는 미지의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바이러스라는 명칭을 붙일 정도이니 말이다.

튤립에 덧씌워진 욕망의 이면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있었듯이 사회를 뒤흔드는 욕망의 무질서와 부조화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욕망을 한 꺼풀 걷어내고 나면 세상이 정상을 회복하리라 믿는다.

비트코인에 빠져 있는 이 남자 또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황제의, 사랑의 고백’처럼.

이세원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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