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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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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을 바라보며…
  • 전민일보
  • 승인 2022.06.03 09: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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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간호법이 보건복지위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는 내용을 보고 또 하나의 어려운 고비를 넘겼구나! 간호법 제정이 막바지 고개를 넘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 ‘삭발까지 한 거리의 의사들’이라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간호법 제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30여 년 전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을 돌이켜 본다.

그 시절 병동에 근무하면서 늘 어려웠던 점은, 각기 다른 증상들을 지니고 있는 많은 환자들을 파악하고, 간호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식사시간이었다.

구내식당을 가야하는데, 종종 그 시간 동안 병동에 간호사가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낮시간에는 간호사가 두 세 명 근무하기 때문에 그나마 짧은 시간 동안 돌아가면서, 식당에 다녀올 수 있지만, 저녁시간이나 나이트근무가 끝나가는 아침식사 시간에는, 번갈아서 식당에 갈 수 있는 간호사가 없는 것이었다.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원들이 병동을 돌보는 동안, 불안한 마음으로 식당으로 달려가서 그야말로 흡입하듯이 식사를 하거나, 환자를 돌보다 구내식당 운영시간을 놓치면, 식사도 놓치게 되는 그런 직장생활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그야말로 나를 괴롭혔던 암초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이트 근무였다.

밤 근무를 하고 나면 입안의 점막이 벗겨지고 설사를 자주 하는 등 건강상태를 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수없이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했기 때문에 버텼다. 간호사 생활 4년 8개월 만에, 결혼을 하면 병원을 그만 둬야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규정이 있다는 상사의 설명을 듣고 병원을 떠났지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던 이유는 바로 밤 근무였다.

가끔 병원근무를 시작한 지 이삼 개월 밖에 안 된 졸업생이 상담을 요청하고 학교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병동 일에 적응이 아직 안되었는데, 독립적으로 환자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불안하고 두려워서 병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이 아닌 다른 직업을 찾으려 한다고 한다.

그렇다. 몇 십 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는 간호사의 일터는 바로 간호사를 보호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간호법은 바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법에서 정한 수의 간호사를 고용해서 간호사당 적정 수의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하고, 나이트 근무에 대한 선택을 하도록 하며, 적정 수의 간호사가 근무함으로써 제 시간에 식사하고 화장실을 가는 등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일에 대한 숙련도를 높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기다려 주고, 자신감 있게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런 제도를 만들게 되면 과연 간호사만 좋은 세상이 될까? 조금 멀리 그리고 큰 안목으로 바라보면, 저출산·고령화 및 감염병으로 인한 국가의료위기 상황에서 국민건강관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간호사 등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확대하며, 이에 필요한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 등 국가 차원의 세부 시책을 마련하는 제도적 보완의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신규간호사의 사직률이 낮아지게 되어, 환자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 있는 간호사의 돌봄을 받게 될 것이며, 병원 운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간호사 인력수급의 어려움도 해소될 것이다.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을 간호사가 대신 해주고, 잡음없이 잘(?) 살아가던 그런 시절은 이제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요즘 간호사들에게 해결방법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네거티브 역시 해결방법이 아니다.

어느 시점부터 내던져 버렸는지 모르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다시 찾고, 의료인으로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갖고 대화의 장을 마련하며, 국민을 볼모로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78년 전(1944년 8. 21) 일본 제국주의는, 이 땅의 의료자원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 ‘의사규칙’(1913년 제정), ‘간호부 규칙’과 ‘산파규칙’(1914년 제정)을 ‘조선의료령’으로 통합해 규정했었다. 하지만 전쟁에 패망한 후 1948년 일본은 의료법에서 간호법과 의사법을 분리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44년에 통합된 조선의료령이 1951년 ‘국민의료법’으로 또다시 1962년 ‘의료법’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여전히 의사와 의료기관 중심의 법으로 유지되고 있어, 의료법 제정 당시와 비교하여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룬 간호사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국회의사당 앞 간호법 제정을 위한 시위에 참여하고 왔다. 간호법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이번 집회가 마지막이기를 바라면서…

박금숙 원광보건대학교 간호학부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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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수 2022-06-03 13:59:39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직업이지만, 정작 법은 간호사들을 보호해주지 않는군요...
하루빨리 관련 법이 재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준 2022-06-03 12:26:44
더 나은 간호를 위해 더 나은 근무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간호법 제정이 꼭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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