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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역병, 그리고 케네디 씨의 절망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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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역병, 그리고 케네디 씨의 절망과 희망
  • 전민일보
  • 승인 2022.05.2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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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대해다. 지금 이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신대륙에 발을 딛기 전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절망이다. 승선자의 반 이상이 배고픔과 추위, 질병과 절망감에 목숨을 잃었고, 죽은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는 짧은 애도의 기도와 함께 차디찬 바다 한가운데로 고달팠던 육신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배 위의 모든 사람에게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처절함을 안겨준다.

1845년 삭풍이 휘몰아치는 한겨울의 대서양 한복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해서 ‘관선(官船)’이라고 불린 배 위에서‘케네디’씨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1845년 무렵 아일랜드의 상황은 참혹했다. 아일랜드인의 주식인 감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질이 발생해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오늘날 ‘아일랜드 대기근’이라 불리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안 그래도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가혹한 착취에 고통받던 아일랜드 국민의 삶이었다. 감자가 있어 그나마 배는 곯지 않으면서 힘든 삶을 이겨내었는데, 감자 농사의 대흉작으로 인해 삶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16세기 무렵 남미 원정에서 돌아온 스페인 군대가 들여온 감자는 유럽에서 인기 있는 작물은 아니었다. 남미 대륙이 원산지인 감자는 수분이 많지 않아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하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을 만큼 양이 풍부하기에 장거리 항해에는 적격이었지만 대부분의 유럽인은 감자를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시체가 묻히는 땅속에서 자라고 성경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류층뿐 아니라 하류층 민중에게도 굶어 죽을지언정 감자는 안 먹는다는 정서가 대세였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귀족 중심의 사회가 시민 중심의 실용주의 사회로 전환되면서 감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자의 맛과 효용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유럽에서 감자가 대규모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제국주의 시절 모든 식민지가 그러했듯 강대국의 식량과 부의 생산기지로 아일랜드는 최적지였다. 당시 영국에 수출되는 감자의 상당량을 생산하면서 아일랜드의 상류층은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구황작물인 감자의 특성상 아일랜드 국민도 당장은 배고픔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완전한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1845년부터 감자밭을 휩쓴 괴질로 감자는 다 죽어 버렸고, 이런 상황에서도 영국은 수탈을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가 나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들에게 내리는 당연한 신의 형벌이라며 최소한의 인도적인 지원도 하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무능하고 기회주의적인 지도자들은 영국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자신들의 영달을 취하는 데만 눈이 멀었다. 그 결과 당시 아일랜드 전 국민의 1/3에 달하는 200만 명이 굶어 죽거나, 목숨을 걸고 신대륙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케네디 씨는 감자의 괴질이 신의 형벌이 아니라 곰팡이에 의한 병이었다는 사실을 꿈엔들 상상했을까?

1861년 독일의 식물학자 ‘안톤 데 바리(Anton de Bary)’는 병에 걸린 감자에서 병원성 곰팡이를 분리해 내고 ‘감자역병’이라는 곰팡이에 의한 병이 괴질의 원인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아일랜드인들이 신의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생물에 의한 병으로 고통받은 것임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안톤 데 바리’는 식물도 병에 걸리며 병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로 오늘날 ‘식물병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추앙받고 있다.

케네디 씨는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리운 조국이 대기근 이후 불과 16년 만에 적어도 과학적으로는 머리가 나쁘고 게으른 민족이라는 오명을 벗게 된 사실을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며 자신의 증손자인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관 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에 발생한 감자역병이 아니었다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있을 수 있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세원 국립농업과학원 작물보호과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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