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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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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김치
  • 전민일보
  • 승인 2022.04.2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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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로 싼 네모난 그릇 위에 곱게 갠 하얀 손수건이 놓여 있다. 그릇을 꺼내 열고 보니 새로 담은 김치가 가득했다.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그리고 고들빼기김치까지다.

옆집 언니네 김치는 내 입맛에 딱 맞다. 너무 짜지도 맵지도 않고 서울김치 같이 약간 달면서도 삼삼한 감칠맛이 난다.

마침 밥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 밥상을 차렸다. 자꾸만 김치가 먹고 싶어서 밥을 더 먹게 되었다. 잊어버려도 될 손수건이건만. 내 손수건에 대한 답례가 너무 거했다.

고들빼기김치는 전주에 와서 처음 알았다. 고들빼기김치는 담기가 어렵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전주사람들의 김치 솜씨는 특별하고 인심도 좋다.

내가 처음 교동에서 신접살이 할 때 동네사람 한 집에서 김치를 담으면 잔칫날 같았다. 난 그때 고구마순 김치도 알았는데 묘한 맛이었다. 그때부터 고구마순 나물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확독에 고추를 갈아서 그 그릇에다 바로 김치를 버물었다. 방금 버무린 김치를 이웃집에 한 그릇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 주인몫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그때의 김치 선물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전주 사람 김치 나누어 먹는 일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내가 김장김치 안 담게 된 지는 십여 년도 넘는다. 그러나 이웃에서 들어오는 김치가 내가 담는 것보다 많게 되어서 다음 철까지 먹게 된다. 김장때마다 한 통을 준비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지금도 익은 김치를 맛나게 먹고 있다.

오늘 언니의 고들빼기김치를 먹고 고들빼기김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고하 선생님의 글이 생각나서 여기 옮겨본다.

“고들빼기김치는 전라도, 특히 전주의 음식이다. 다른 지방의 밥상에서 그리 흔하게 대할 수 없는 김치이기 때문이다.”

“옛날, 한 전라도 친구가 서울 친구를 찾아 길을 뜨면서, 자그마한 옹기단지에 고들빼기김치를 맛갈지게 담아 선물로 가져갔다. 그러나 서울 친구는 이사를 하여 몇 날을 그 집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가지고 간 노자는 떨어지고, 자고 먹은 값을 치르기에도 돈이 모자랐다. 낭패한 이 친구, 숙식을 하여 준 주인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가진 것이란 이 김치단지 밖에 없으니, 이로써 숙식비 대신 받아달라고 친구에의 선물용 고들빼기김치 단지를 내어밀었다. 주인은 단지의 뚜껑을 열어 김치 맛을 보고는 ‘아, 인삼 김치 아니요.’ 하더라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전라도 친구는 그게 아니라 ‘고들빼기김치요’ 하고 설명했지만, 서울의 그 집 주인은 ‘인삼 맛의 인삼 김치’라며, 이 귀물을 얼마 안 되는 숙식비만으로 받을 수 없으니 돌아가는 노자에 보태 쓰라고 넉넉한 돈까지 주더라는 이야기다. 이리하여 이 고들빼기김치는 인삼김치로도 불리어지고 있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란 말마따나, 사실 고들빼기김치에는 인삼의 효력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오랜만에 전주의 특미를 맛보고 새삼 나도 전주의 맛에 길들여진 전주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리하여 영호남의 교류가 확실히 이어진 게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에는 고들빼기김치를 잘 담지 않는 것 같다. 손이 많이 가니까, 점점 멀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옛날에는 자생 고들빼기가 많았단다. 그것은 자색을 띠어서 쌉싸름한 맛이 사람의 위가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단다. 사람의 위가 싫어하는 맛이 단맛이라는데 요즈음은 단맛이 흔해서 위장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는지도 모르겠다. 전주의 옛 맛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전주가 음식도시인 만큼 옛 맛을 이어가는 언니의 고들빼기김치에 감사하며 대를 이어가기 바란다.

밥 먹다가 사진을 스캔했다. 진수성찬이 부러울 것 없다. 고들빼기김치를 가운데 두고, 밭에서 갓 따온 호박, 가지, 고추, 상치 등의 하늘 땅 맛이 싱그럽다. 요리솜씨는 없어도…. 재료의 제 맛이 살아 있다. 멋 낼 필요 없는 있는 그대로 소박한 내 밥상이 되었다.

조윤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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