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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자리, 得其死所(득기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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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자리, 得其死所(득기사소)
  • 전민일보
  • 승인 2022.04.0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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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탈출을 위한 교통편이 아니라 탄환입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암살 위협을 피해 해외로 망명할 것을 권유한 미국에 대해 행한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1978~ )의 답변이다.

나토에 가입하려 한다는 이유로 러시아는 2022. 2. 24. 탱크 1,600대와 15만 명의 병력을 앞세워 인접국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한다. 소련 연방 해체와 동시에 독립한 신생국이지만(1991), 지금은 매우 위험한 풍전등화 그 자체였다.

골리앗 러시아와의 싸움에 필패할 것이 뻔하였기에 망명정부를 제안했다. 그렇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면서 수도 키이우에 남아서 끝까지 결사 항쟁하겠음을 선언한다. “우리의 독립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키이우에 남겠다.”

또 EU 리더들에게 “여러분이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비장함을 읽을 수 있다. 언제까지 지키겠냐는 기자의 질문에“영원히!”라고 답했던 고령의 전직 대통령도 총을 들었다.

이런 지도자들이라면 희망이 보인다.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는 많은 국민이 속속 전선으로 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골리앗이 “너 지금 나와 장난한다는 거냐?”라는 듯이 병원·학교·민간인 거주지인 아파트·핵발전소 등을 불문하고 마구잡이 포격을 가하지만, 결사항쟁을 외친 그들에게 각국은 “세계의 영웅”, “진정한 지도자”라고 극찬한다.

우리의 선조도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을 버리고 자신만 명나라 근처인 압록강변 의주까지 도망쳤고, 인조 역시 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자 공주까지 도망하고(1624)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도망하여 마침내 굴욕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청나라에 항복례를 취해야 했다(1637).

또 6·25가 터지자 국군이 북진 중이라고 거짓 방송하면서 자신은 대전으로 도망쳤던 이승만, 비정상적인 군부 집권에 항의하는 시민을 폭도라며 무자비하게 총질했던 전두환도 있었고, 쿠데타에 맞서지 못했던 대통령 윤보선과 최규하도 있었다. 지금까지도 크게 환영받지 못한 비겁한 지도자들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영웅도 많았다.

출전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잡아다가 모진 고문과 구금을 당하던 사이 통제사로 임명된 원균이 수군을 전멸시키자 위급함을 느낀 선조는 수군을 폐하고 권율의 휘하에서 육군으로만 싸울 것을 명한다. 이때 이순신은 “아직도 열두 척이나 되는 전함이 있고 미천한 제가 살아 있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이런 불굴의 각오와 투철한 신념이 있었기에 최악의 남해 바다에서 23전 23승이라는 세계사에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승리로 조선을 지켜낸다. 그가 없었다면 1592년 이래 줄곧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임에 분명했다. 하늘이 낸 정말 훌륭한 위인이 있었음을 천행으로 여길 뿐이다.

1926년 12월 일제의 수탈기관인 동양척식회사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 의사, 1932년 4월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축하장에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군 장성들을 폭살했던 윤봉길의사, 같은 해 1월 도쿄에서 일왕이 탄마차에 폭탄을 던졌던 이봉창 의사, 1920년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에서 수많은 일군을 죽인 홍범도 장군과 이범석 장군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등의 애국자들과 이름 없는 전선에서 죽어갔던 수많은 의(승)병과 학도의용병들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죽을 자리(得其死所)를 알고 있었던 범부들이었다.

고위관료들은 피난이라는 명분으로 추한 모습을 한 채 도망길에 나섰다면, 사는 그곳이 죽을 자리라며 맞서 싸웠던 결연한 민초들이었다.

이토를 저격한 후 “코레아 우라!”를 삼창했던 열혈남 안중근(1909), 3·1운동 때 “대한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쳤던 17세의 유관순(1919), “장부가 집을 떠나면 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丈夫出家生不還).”는 윤봉길, “아직도 열두 척이나 되는 전함이 있고 미천한 제가 있습니다((尙有十二微臣不死).”의 이순신, 왜장을 껴안고 촉석루 남강에 투신했던 아녀자 논개(1593),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라!”는 6·25의 영웅 백선엽, “첫째도 독립 둘째도 독립 셋째도 독립”이라던 백범, 나라가 금융위기를 당한 IMF 때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던 (1998) 필부필부가 오늘의 선진국 대한민국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외에도 이름 없는 수많은 백성과 독립군 그리고 의병(의승병·의수병 포함)들이 모두가 진정한 영웅들이고 애국자들이었음은 물론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모두가 똘똘 뭉쳐 하나가 되었음이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총을 들고 전선을 향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 모두가 죽을 바를 아는 진정한 영웅들이다. 어둠이 깊으면 별은 더욱 환하게 빛나듯 밝은 미래가 함께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달린 목숨,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가족과 이웃을 만나는 큰길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사직과 운명을 같이 하고(國君死社稷), 대부는 군대와 운명을 같이 하고(大夫死衆), 선비는 군주의 명에 죽는다(士死制, 예기).”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구차하게 자기만 살려고 仁을 해치지 않고 몸을 바쳐 仁을 이룬다(공자).”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기와 공자님의 말씀 그리고 이형기(1933~2005) 시인의 ‘낙화’가 이에 잘 어울리는 격려가 될까?

힘찬 박수와 함께 위기를 잘 극복하길 기도해야겠다. “노블레스 오블리지의 우크라이나여, 그대에게 영광을!”

양태규 옛글 21 대표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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