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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생활 속 책 문화 꽃피우는 동네책방 키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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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생활 속 책 문화 꽃피우는 동네책방 키울 터"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2.01.1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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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익은 언어들 이지선 책방지기

아이들은 물론이고 성인들의 문해력은 해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좀처럼 책을 읽는 인구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중이다. 
책을 사더라도 굳이 책방을 찾기 보단, 손안의 만능열쇠인 스마트폰을 이용해 온라인 서점에서 뚝딱 구입하는 인구가 절대다수다.
이런 상황에서 동네 책방의 설 곳은 아무리 살펴봐도 없어보인다.
코로나19까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책 시장을 한껏 움츠러 든 지금, 도리어 동네 책방을 더 키우며 책 좀 사라며 다그치는 사람이 있다. 아예 동네 책방 좀 사랑해 달라며 책까지 냈다. 
짧은 글로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던 카피라이터에서, 고향인 전주로 돌아와 색깔 있는 책방 '잘익은 언어들'을 운영중인 이지선(47)씨가 그 주인공이다. / 편집자주

어렸을 때 부터 차오르는 끼를 멈추는 방법을 몰랐단다. 책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이긴 했지만, 연예인도 하고 싶었다가, 댄서도 되고 싶었다가. 책에서 만난 세상처럼 드넓고 다양한 꿈을 꿨단다.

하지만 당시엔 특별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열심히 공부한 점수를 부여잡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짧은 순간에 사로잡아야 하는 글을 쓰는 직업을 만났다.

카피라이터로 살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지만 서울 생활은 전주에서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잠깐 힘이 났고, 자주 길게 지쳤다. 그렇게 고향인 전주로 돌아왔다.

하고 싶은 일을 찾다가, 책방을 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송천동에 한 골목 뒤편에 터를 잡았다. 2017년 '잘익은 언어들' 시즌1의 시작이 열린 것이다.

"초반엔 책방에 손님이 없으니 알리기 위해 뭐라도 하는 열혈 책방지기였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제 행동이 호불호가 많이 갈렸겠다 싶은데, 그땐 그런걸 재고 따질 여력이 없었네요."

말 그대로 책방에서 춤을 추는 영상도 올려봤고, 책이 안팔리는 답답함을 SNS를 통해 가감없이 털어놓기도 하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동네방네 자랑도 했다.

책을 고르는 기준도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위주로만 고르던 시절도 있었다.  운영자만 만족하고 찾아오는 이는 어리둥절한 '초보 책방지기' 시절도 지금은 추억이 됐다.

동네 책방이 거대 자본을 등에 지고 운영되는 온라인 서점을 물량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화행사와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들, 그리고 책방지기의 애정이 삼박자를 어우러내야 했다.

서울까지 쫓아다니며 사업계획안을 발표하기도 했고, 책꾸러미 납품사업을 알게 돼 허리가 휘도록 책 박스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할 때도 부지기수였다. 전시된 책 하나하나에 감상평을 담은 메모를 빼곡히 적어내려가던 자신을 바라보던 아이들은 결국 한 마디 했단다. "엄마, 이거 해서 얼마 벌어?"

"초반엔 정말 책방 수입보다 카피라이터 수입이 더 컸기 때문에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생활이 꽤 오래 이어졌어요. 하고 싶은 일(책방)을 위해 하기 싫은 일(카피라이터)로 연명을 하는 상황이었달까요?"

서울처럼 문화생활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독서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닌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누가봐도 모험 그 자체였다. 부모님은 책방을 하겠다고 전주까지 짐을 싸서 내려온 딸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시면서도 가장 큰 조력자가 돼주었다.

그래도 코로나19가 세계를 뒤흔들기 전인 2019년까진 어렵고 힘들어도 책방을 키워가는 재미로 버텼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단순한 위기 수준이 아닌 그야말로 악몽 같았다.

비대면이 최우선되는 상황에서 동네 책방을 들러 책을 사겠다는 사람은 그야말로 손에 꼽았다. 텅 빈 가게를 지키는 일은 익숙해졌지만 다달이 돌아오는 월세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특히 전주시가 본격적으로 도서관 정비사업에 나서면서부터 책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의 위기감도 덩달아 커졌다. 

어려울 수록 돌아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정면에 마주보고 이겨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세를 내는 세입자에서 단독 공간을 가진 '주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송천동 시절을 막 내리고 금암동 거북바우로에 새 터를 잡았다. '잘익은 언어들' 시즌2는 코로나19가 가장 크게 창궐하던 지난해 8월 시작됐다.

 

이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시민들이 책에 대해 갖는 애정 덕분이었다는 이씨는 "전주에 책방을 내겠다고 했을때만 해도 전주 사람들은 책을 안산다는 말을 많이 들어 걱정을 했다"면서도 "직접 책방을 운영해보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송천동 뒷골목까지 찾아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아직은 지역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단순히 책만 파는 것이 목표는 아니란다. 지역에서 독특한 움직임을 펼치고 있는 젊은 세대와의 협업도 적극적이다. 고향인 전주가 세련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싶기 때문이다.

2020년 전주의 동네책방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전주동네책방문학상'은 전국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것 역시 전주의 변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어느덧 6년차 책방지기가 된 이씨는 여기에 이르는 동안 느낀 희노애락을 책 한권에 담아내기도 했다. 소리의 고장 전주의 느낌을 담뿍 담은 '책방뎐'은 전주에서 작은 책방이 어떻게 운영될 수 있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

본격적인 시즌2가 시작되는 2022년에도 책방 문을 활짝 연 이씨의 올해 소망은 '지속적인 도전'이다. 

"정말로 이젠 책에 집중해야 할 때임은 분명하지만, 다양한 시도도 빼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책방에 연주자들이 일상처럼 찾아 연주를 하거나, 좋은 책을 선별해주는 '잘익은 언어들 책연구회' 같은 것도 만들고 싶네요."

고향으로 돌아와 이제는 대체 불가능한 영역을 구축한 이지선 책방지기는 이제 어엿한 '알바생'도 생겨 경영주의 마음도 절실히 느낀다면서 올해의 도전을 벌써부터 궁리중이다.

'잘익은 언어들' 책방에서 익어갈 다음 이야기가 전주에 또다른 색깔을 입힐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충분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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