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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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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죽겠네
  • 전민일보
  • 승인 2021.12.24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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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전파하기 조선 땅에 선교의 거점을 마련하고 전교 활동에 나선 선교사들은 조선의 풍습을 제대로 몰라 ‘위아래도 없는 쌍놈’이라고 질타당했다.

전도하기 위해 집에 들어가서는 아랫목에 앉아 두 다리를 뻗는 등의 작은 실수로 전도의 길이 막히자 그들은 서둘러 조선의 풍습도 익히고 성경을 번역한 만큼 우리말을 익혔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들렸다.

‘아이고 죽겠네’ ‘배고파 죽겠네’ ‘힘들어 죽겠네’ 
‘우스워 죽겠네’ ‘배불러 죽겠네’ ‘좋아 죽겠네’

전자의 경우 힘든 상황에서 내뱉는 말이라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하고 이해했다.

그러나 남들이 부러워할 후자와 같은 경우에도 ‘~죽겠네’라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왜 조선 사람들은 말끝마다 죽겠다며 신세타령만 하느냐’며 물었다.

그러자 한 신도가 우리 조선 사람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슬픈 것도, 배고픈 것도, 우스운 것도, 배부른 것도 다 ‘주께 있네’라는 감사의 표현으로 ‘~죽겠네’를 연발한다’고 했다.

유럽인의 ‘신의 뜻’이 조선에서는 ‘죽겠네’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감사를 빨리 표현하다 보니 ‘죽겠네’의 축약형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더불어 ‘우리 마누라’ ‘우리 집 영감’ ‘우리 아들’ 등 선교사들이 궁금해하는 것까지 설명했다.

주 안에 하나 되었으니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강해져서 그렇다고 했다.

누구나 형제 자매라 하는 기독교인의 용어를 적용했다. 민간어원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임기응변이다.

요즈음 죽을 일이 너무 많다. ‘보기 싫어 죽겠네’, ‘듣기 싫어 죽겠네’ 정보의 홍수 속에 밀려드는 가짜 뉴스와 상대를 비방하는 흑색 기사들은 읽을 가치도 없는 낭설까지 무작위로 퍼 날라 피곤하게 한다.

거기에는 흑색이나 백색만 있어 분위기가 삭막하다. 익명성이라는 휘장에 숨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이 어느 틈에 ‘우리’를 형성하여 타 집단을 공격하며 매장한다.

자연스럽고 정겨운 일상 용어로서의 ‘우리’가 끼리끼리의 강고한 집단개념으로 변질된 것도 그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취미나 가치관이 같다는 것만으로 형성된 동류의식은 의외로 강한 단결력을 보인다. 그러나 책임감은 없다.

그래도 순기능이 많아 바람직하나 피해를 입은 사람이 많아 그 역기능도 심각하다.

다수로서의 ‘우리’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생각을 반영하므로 태산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우리’가 경계의 대상이 된 이유다.

최근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끽연 동지회’는 그 어느 집단보다 동류의식이 강하다. 굳이 소속이 없어도 흡연장소에서 만나는 동지는 혈육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워한다.

사회적인 냉소가 따듯한 정감으로 바뀌며 느끼는 동질감은 ‘우리 집’과 같은 일상의 수준을 초월한다. 소외감이 강한 자들의 결속력을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젊은 층의 소외감은 여유롭지 못한 경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SNS의 편향적 기사에 빠져든다. 소외감의 크기만큼 정비례하여 나타나는 것이 불만적 우리의 형성이다.

건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모두가 ‘좋아 죽겠네’를 입버릇처럼 외치고 너 나 없이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우리를 이루는 것이 ‘~죽겠네’와 ‘우리’의 순기능을 복원하는 길이다.

강기옥 시인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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