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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면, 仁者樂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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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면, 仁者樂山
  • 전민일보
  • 승인 2021.11.1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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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뛰어들고 싶은 만산홍엽의 단풍 세상이다.

“들녘 한복판에서 고추잠자리 한 마리 두 주먹 꼭 가을의 손을 잡고 있다//(강성일, 가을의 손)”

말이 필요 없는 농익은 가을의 노래들이다. 무더운 여름 내내 그렇게도 구슬피 울던 매미가 사라진 자리엔 어느새 붉은 가을로 가득하다.

서늘한 바람과 카랑카랑한 햇살 그리고 울긋불긋 꽃단장에 설레는 가슴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 유혹이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나 한 무제의 ‘추풍사(秋風辭)’ 그리고 구양수의 ‘추성부(秋聲賦)’가 아니어도 쪽빛 하늘과 만산홍엽은 어떤 언어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고고함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시인이고 화가며 음악가가 된다. 파란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 부담 없이 혼자 떠나기에 좋은 건 역시 산행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배낭 하나 둘러메고 나서면 그만이다. 부담 없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여유 있고 편한 자유 그 자체다.

흐르는 물이 선두를 다투지 않은 것처럼 벌써 많은 산객이 여유롭게 신선 되고 있다. 앞뒤 좌우에서 재잘거리는 낭만은 모두 복잡한 세상사와는 관계가 없다. 오직 자연 예찬뿐이다.

그렇다. 나서 자라고 시들어 죽는 그의 일생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닮았다.

춘하추동의 변화는 아주 단순하여 누구나 잘 알고 있음에도 그를 보면 언제나 감탄하며 닮으려 한다. 그만큼 오염되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인가?

여기에 경사진 바윗길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에 비례하여 희열도 커지는 마운틴 오르가즘은 힘찬 발걸음을 재촉한다. 진입할수록 산은 싱싱한 자신을 내준다. 무욕의 청정함으로 나를 품는다.

그래서 산에는 신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껏 산만한 사람 만나지 못했고 나 또한 산만한 사람 되지 못했기에 산을 자주 찾는다.

늘 그 자리에서 여유 있게 받아 주며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안아준다.

그리고 떠날 때는 희망 잃지 말라며 용기와 자신감도 빵빵 채워준다. 활력을 주는 친구이자 연인이며 스승이고 하느님이다. 산을 만나 그 비결을 익히고 잠시나마 산이 된다.

좁은 국토로 농자대본의 장해요인이었지만 여유가 생기면서 축복이 되고 있는 산. 삶의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땀 흘린 만큼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 그곳이 내가 누릴 여유이고 행복이다. 높이 빨리 오르려고 하면 더 많은 땀과 인내를 요구한다.

그에 비례하여 산은 꼭 그만큼 자리를 내준다. 그래서 인생과 비유된 명언들도 유난히 많다. “군자의 도는(君子之道)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로부터 하며(辟如行遠必自題),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데로부터 시작함과 같다(辟如登高必自卑, 중용15장)”

“설산을 황금 덩어리로 바꾸어 그것을 두 배로 불린다 해도 사람의 욕심을 채울 수는 없다(상응부경전)”

자연을 통하여 깨닫고 그에 순응하여 사는 삶,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는 수많은 격언이 우릴 가르친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가슴에 닿는 공자님의 한 마디는 산과 물을 어진 자와 지혜로운 자로 대비하여 가르친 명구다.

즉, 지혜로운 자는 대인관계에 있어 물과 같이 처신하는 사람이라면, 어진 자는 천지자연에 순응하고 즐기면서 사는 산과 같은 사람이다.

찾으면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맞이한 산, 세상의 온갖 비밀을 간직하였음에도 늘 무거운 침묵으로 많은 깨우침을 준다.

온갖 사연 하소연에도 싫은 기색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지친 마음 감싼다. 그의 진실함을 알기에 돌아갈 땐 언제나 즐겁고 희망 걸음이다.

붉게 물든 단풍에 나도 따라 물든 내 가슴,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는 가을이다.

“실바람에 우수수 낙엽 되어 나뒹구는 해질녁 하산 길 / 수북히 쌓인 그리움 차마 밟지 못하는데 몰아치는 갈바람 동행을 재촉한다// 가던 길 붙잡고 신음하는 그녀 뒤돌아보며 자꾸 멈추곤 한다// 가버린 세월 화려했던 여름을 잊지 못해서인가?”

양태규 옛글 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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