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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동네, 소소한 변화가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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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동네, 소소한 변화가 느껴지나요
  • 홍민희 기자
  • 승인 2021.10.2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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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동네의 문제를 내가 직접 제기할 순 없을까?

대의민주주의가 일상화 된 요즘이지만, 여전히 골목 사이사이 스며들어 살고 있는 평범한 주민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달되는 과정이 낯설고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모두를 위해 머리를 맞대 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주민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문제가 결국 지역의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어려우면서도, 딱히 돈은 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문제에 대해 정면돌파를 하겠다고 나선 곳이 있다. 바로 전주시사회혁신센터다.

전주지역에 문제 사랑방을 만들어, 동네 주민들의 목소리를 수집, 그걸 행정과 함께 해결방안을 찾겠다는 포부인데, 전국적으로도 첫 시도다. / 편집자주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서 앗아갔지만, 그러면서도 우리 곁의 가까운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일깨워 준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코로나시대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지역'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하이퍼로컬'이란 사전적 의미로 '아주 좁은 지역의 특성에 맞춘'이란 뜻을 가졌는데, 기존의 로컬(지역)보다 더 좁은 동네 생활권을 가리킨다. 요즘말로 '슬세권'인 셈.

슬세권은 슬리퍼와 세권(勢圈)의 합성어로, 슬리퍼를 신고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시설 및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말한다. 딱 동네 생활권이다.

기성세대가 역세권으로 대표되는 교통 요지를 중요시했다면, 최근 MZ세대로 불리는 2030 세대에겐 슬세권이 거주지 선택의 중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슬세권이 사랑받는 만큼, 슬세권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도 덩달아 관심이 모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네 주민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 문제를 말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행정에까지 이르는 과정 자체를 어려워하고, 아예 그 기회가 차단돼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센터는 동네 문제를 수집하는 방식 중 접근 방법에 주목했다. '누구라도' 와서 의견을 남기고, '어떤' 의견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려면 주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어렵진 않았다. 동네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동네 가게'가 있기 마련. 이곳을 동네 문제를 수집하는 작은 사회혁신공간으로 삼았다. 지난 9월 6일의 일이다.

전국 어디에서도 시도되어본 적 없는 것이어서 이 모든 과정이 낯설었지만, 같은 마음을 가진 소상공인들이 적극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덕진구와 완산구에 각각 5곳에 문제 사랑방을 만들었다.

사랑방의 운영 방식은 원초적일 정도로 간단하다. 지정된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가거나 사람을 만나러 가면 거기에 놓인 메모지에 그간 느꼈던 동네에서의 불편함, 개선점을 적어서 붙여두면, 센터 직원들이 일정기간 마다 한번씩 가서 '수집'한다. 말그대로 동네 문제를 모으는 것이다.

사랑방을 관리하고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는 임지현 프로젝트 매니저는 "우선 우리 동네분들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를 6개 카테고리(교통, 환경, 주택, 일자리, 성평등, 기타)로 분류했다"며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메모지에 적혀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다양했다. 횡단보도가 없어서 사고가 잦다며 당장 횡단보도 색칠을 해달라는 의견부터 보여주기식 일자리 사업에 불만을 가지며 행정의 반성을 촉구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 집앞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작은 민원들까지 더해져 게시판은 알록달록 메모지꽃이 피었다.

사랑방 역할을 자처한 가게 주인들도 뜨거운 주민들의 반응을 예상치 못했단다.

사실 처음엔 반응이 저조할까 싶어 방문하는 손님들 손에 볼펜을 건네주며 의견을 내주십사 제안하려 했는데 오히려 가게 안에 있는 게시판을 보고 먼저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메모를 해주더라는 말을 전하는 주인들의 말은 행사를 기획한 사람들에게 천군만마의 힘이 돼주었다.

본격적인 해결시도가 있기도 전에 벌써 주민들의 의견이 행정에 반영돼 문제가 해결된 사례도 나왔다.

금암동 주택가 일대에 쓰레기 무단투기가 심각하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해결이 되는 건 어째서인지 미뤄지기만 했다.

그런데 사랑방을 찾은 한 주민이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메모를 남겼고, 우연히 이곳을 들린 금암2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찾아 이 문제를 공론화 해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그곳에 화분을 놓아 향후 있을 무단투기 가능성을 없앤 것이다.

이 작은 성공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는 원민 전주시사회혁신센터장은 이제 시작이며, 행정에 대한 낮은 신뢰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원 센터장은 "동네의 크고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행정의 노력이 절실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이 행정에 갖는 신뢰는 낮은 상황이다"며 "주민들이 동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도 행정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몰라 문제 해결의 때를 놓치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방증하는 만큼 이번 사랑방 운영을 통해 주민들이 행정이 그리 멀지 않고, 이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센터는 오는 12월 30일까지 사랑방에서 모인 동네 문제·의제 발굴 사항을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나 시의원들과 만나 풀어놓고 전달하는 시간도 갖겠다는 입장이다.

원 센터장은 "주민들이 자신이 겪는 동네의 문제를 발굴하고 제기하는 것이 일상의 문화가 되길 바란다"며 "그 과정이 친근해지고 실현가능성 있기 위해 내년엔 동네의 50개 소상공인들 매장에 사랑방을 설치해 더 많은 지역문제 해결에 귀기울여 볼 예정이다"고 소망을 전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주민들이 사는 슬세권이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은 내달 5일과 6일 양일간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사회혁신전주에서 열리는 '2021 전주사회혁신한마당 위대한, 작은 발걸음'에서 만날 수 있다.

동네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큰 마음들이 오고갔는지 알고 싶은 분들이라면 기꺼이 발걸음을 해도 좋을 것이다.
홍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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