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3-29 17:10 (금)
놀이도둑
상태바
놀이도둑
  • 전민일보
  • 승인 2021.10.20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유년기는 항상 외로웠다. 이웃이 살지 않는 학교운동장 옆 교장관사에 살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서 난 친구가 별로 없었다. 방학이 되면 더욱더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서 쓸쓸했다, 어쩌다 학교 옆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학교운동장에 놀러 오는 날은 친구 가난에서 벗어나는 날이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그 시절, 학교엔 운동기구나 놀이기구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교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학교 아저씨가 순찰하고 다녔지만, 나는 교장 선생님의 딸이라는 배려로 교실을 드나드는 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빈 교실에 들어가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놀았다. 책상 사이에 쪼그리고 앉거나 바닥에 납작 엎드려 술래의 눈길을 피하는 숨바꼭질은 스릴 만점이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게 차라리 들켜버렸으면 하기도 했다.

들키고 나면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린 책상과 걸상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고 즐겼다. 의자 두 개를 마주 보고 붙여 놓으면 긴마루 같은 방을 만들 수 있었다. 책걸상이 많이 있었다면 아흔아홉 칸이라도 만들었을 것이다.

하얀 눈이 펼쳐진 겨울 운동장은 매우 넓고 포근해 보였다.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다. 반질반질 윤이 난 얼음 바닥에 발을 붙이고 팔을 벌리면 나는 한 마리의 날렵한 새가 되었다. 학교 아저씨가 만들어 준 썰매는 지금의 자가용이 부럽지 않을 만큼 신 나는 보물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아이를 찾는 어머니들의 부름으로 흥이 깨지고 말았다.

갑자기 추위를 느껴 집안으로 뛰어들면 미처 마르지 않는 손이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었다. 꽁꽁 언 몸을 녹이려고 아랫목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한참을 파묻고 있으면 그때야 언 몸이 풀리는 것이었다. 얼음이 풀리는 동안 손발이 가려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간지러운 것도 같고 아리는 것도 같은 묘한 통증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나는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실컷 놀고 와서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며 울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철부지였던가.

요즘엔 학교나 동네 공원에 놀이 기구와 운동기구가 많아서 참 좋다. 그네, 시소, 늑목, 미끄럼틀, 회전그네 등등 가지가지다. 그런데 그 많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는 ‘모모’라는 시간도둑을 만들어 세계의 많은 사람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상상의 ‘시간도둑’이 있듯이 난 ‘놀이도둑’을 만들어볼까?

그 도둑은 날마다 틈나는 대로 놀이를 훔쳐다가 모두 삼켜 버린다. 어른들의 머릿속에도 놀이도둑이 스며들어 “일류대학! 좋은 대학 출신!”하고 꼬드긴다.

어른들은 높은 고지를 향해 밧줄을 던져놓고 아이들에게 올라가라 떠미는 게 아닐까. 바둥바둥 안간힘을 쓰다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아이들이 골목에서 또래 집단으로부터 폭행당했을 것 같다. 운동장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고 놀이도둑들이 판을 친다.

놀이도둑이 정말 있을 것 같다. 놀이터에 나가도 또래가 없으니 또래끼리 놀아 본 경험도 부족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풀길이 없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아야 할 아이를 엄마가 앉아서 망을 보고 있다. 행여 혹시나…. 혼자서 즐기는 컴퓨터 게임만 하다 보니 성질도 난폭해져 간다. 놀이도둑의 치밀한 파괴 공작인 줄도 모르고 우리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은 또래끼리 어울려 신나게 놀 권리가 있다. 공놀이를 즐기며 공처럼 둥글둥글 부드러운 심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수정보다 맑은 영혼으로 실컷 웃으며,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꿈을 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일류를 향해 달려가도록 종용하는 어른들의 머릿속에서 놀이도둑을 내쫓아버렸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이 아이들을 일류병에 오염되어 입시지옥, 구직시험 지옥 속에서 허우적거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우리 모두 정의의 전사가 되어 곳곳에 스며든 놀이도둑을 내쫓고 운동장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줘야겠다.

난 지금도 어느 추운 겨울밤 여덟 시경에 만난 열 살 남짓한 어린 여학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행복하게 웃어야 할 그 시간에 건널목 앞에서 두 발을 쾅쾅 굴리며 짜증을 부리던, 거의 울어버릴 것 같은 그 아이의 모습을! 어딜 가고 있었을까. 학원 아니면 집?

양영아 수필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이어가는 한동훈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남경호 목사, 개신교 청년 위한 신앙 어록집 ‘영감톡’ 출간
  • 우진미술기행 '빅토르 바자렐리'·'미셸 들라크루아'
  • 옥천문화연구원, 순창군 금과면 일대 ‘지역미래유산답사’
  • 도, ‘JST 공유대학’ 운영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