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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협력자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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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협력자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각
  • 전민일보
  • 승인 2021.08.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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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패망 당시의 ‘사이공 탈출’보다 더 급박한 상황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의 탄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하려는 수 많은 인파로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고, 검문이 강화되면서 살벌한 분위기마저 연출되고 있다.

미국도, 탈레반 스스로도 예상했던 것보다 아프간 정부가 너무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1975년 남베트남 수도였던 사이공(현 호치민) 탈출 사태보다 더 심각한 이유다. 한국도 군 수송기를 보내 아프간 협력자와 가족 등 378명을 한국으로 이송해 왔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들의 한국 이송에 대해 찬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한국정부는 이들에게 ‘난민’지위가 아닌 ‘특별공로자’로 입국하면서 국내 보다 해외서 더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이 무서워 조국을 등지는 일반 난민이기 보다는 한국정부를 길게는 8년간 도운 현지 협력자들이다.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등 일각에서는 난민을 적극 수용했던 유럽국가들이 현재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국민의견을 먼저 수렴할 것을 주장했다.

심지어 종교도 문화도 완전히 다른 이슬람 난민을 단지 인도주의적인 이유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에 비춰볼 때 충격적이다.

다시 시계를 46년전으로 돌려보자. 1975년 월남 패망당시에 사이공 탈출이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당시 한국 대사관 공관원과 교민, 한국인과 결혼한 현지 가족 등 수많은 사람들이 탈출하지 못한 사이 있었다.

힘없고 가난했던 한국의 당시 모습은 무기력함마저 느끼게 했다. 공관원 3명은 수감되는 등 생사고비를 넘기며 5년 뒤에 조국인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힘이 없었기에 미국정부에 철저하게 의존했지만 한국 공관원과 교민은 우선순위가 당시 아니었다.

46년이 지난 현재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G7세계정상회의에도 초청될 정도로 국제적 위상도 커졌다.

힘이 없어서 버림받은 자국민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던 뼈아픈 역사를 우리는 벌써 잊었다.

수 많은 한국인과 결혼한 현지 베트남 가족들은 생이별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번에 입국한 아프칸 협력자들은 한국을 도왔던 협력자들이다. 그들은 단순 난민이 아닌 한국의 친구들이다.

한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그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데, 이를 외면해야한다는 우리의 현 자화상은 46년전 사이공 대탈출 사태를 다시한번 되새기게 만든다.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도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인 아프간 현지의 한국 협력자들을 외면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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