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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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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샌프란시스코
  • 전민일보
  • 승인 2021.07.26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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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가니 일들이 쌓여 자연히 여러 도시들을 방문하게 되었다. 방문한 도시들 중에 뉴욕과 샌프란시스코가 포함되었다. 이 두 도시는 현재 글로벌경제에 가장 영향력이 큰 도시들이라 할 수 있는데, 두 도시의 성격은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도시의 경제적 기능을 단순화해서 보면 뉴욕은 금융중심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테크(신기술기업)중심 도시다. 물론 뉴욕에는 큰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큰 법률회사, 큰 의료기관, 그리고 큰 테크회사들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애기하자면, 샌프란시스코에는 테크금융회사, 테크법률회사, 테크의료기관, 그리고 테크테크회사들이 있다는 농담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세상을 앞에서 끌고가는 기업들이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투자은행들로 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아마존, 페이스북, 알파벳(구글) 등 앱기반 플랫폼 기업과 애플, 테슬라 등 기술선도 기업들이 세상을 이끌고 있는 게 분명해졌다.

한국에서도 지난 십여년 동안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 굵직한 테크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수십년 동안 재벌들에 예속되어 있던 한국경제에 새로운 세력이 머리를 들고 나타나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기능적으로 보면 재벌은 자산운용사와 같다. 유망한 산업에 투자를 결정하는 게 재벌의 주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금융에서 테크로 힘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글로벌 추세가 한국에도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재벌체제가 아직 수명을 다한 것은 아니라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재벌계열 회사들도 한국경제를 함께 견인하고 있다.

이제 희소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아이디어와 기술이다. 머리 좋고 열정을 가진 청년들이 부모나 조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보다 성공하는 사회가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에는 산업화든 민주화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역동성이 그 바탕에 있었다. 기업을 일구는데 청춘을 바친 사람이든 민주화에 청춘을 바친 사람이든 모두 혁신세력이었다. 테크기업의 창업자들은 이 전통을 이어받은 혁신가들이다. 한국경제의 희망이다.

혁신에는 무개념이고 급격한 증세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현집권세력이 아직은 혁신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동안의 정책들을 곰곰히 살펴보면 혁신을 아예 금지하는 정책들도 있었으니 이런 우려가 결코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들을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로 해두자.

금융에서 테크로 힘의 중심이 옮겨감에 따라 도시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도 변화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창업해서 최근 억만장자가 된 주변 사람들이 화제에 오른다. 아니 그런 이야기만 화제에 올리는 것 같다. 캘리포니아 금광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왔던 시기가 연상된다. 요즘에는 뉴욕 시내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집값이 더 비싸다. 상대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 고소득자들이 더 많이 산다는 얘기다. 샌프란시스코가 뉴욕보다 더 역동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빈부의 차가 더 큰 것 같다.

뉴욕에 살다가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사람들은 뉴욕의 문화적 다양성을 그리워한다. 뉴욕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칸막이 없이 교류하는 분위기다. 부유한 금융인들도 가난한 예술가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다.

뉴욕은 인종적으로도 다양하다. 뉴욕에는 K-타운도 있어 한국출신 금융인들, 예술인들,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밤늦게까지 흥청거린다. 샌프란시스코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변변한 한국식당이 없다. 한국음식을 먹으려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산호세 근방까지 나가야 한다.

오랜만에 찾은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인구밀도가 높은 번잡한 도시들에서 주로 살아온 필자에게는 샌프란시스코가 뉴욕보다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또한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방문에서 배울 게 더 많았다.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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