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고향인 필자에게 전북(全北)하면 생각나는 위대한 인물이 있다. 바로 한국 바둑의 국수(國手)인 조남철(趙南哲) 프로기사이다. 본관이 풍양(豊壤)인 그는 1923년 전북 부안에서 출생하였으며, 2006년 노환으로 83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1937년 14세의 어린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프로 9단의 문하생이 되었으며, 1941년 17세의 나이로 한국인 최초로 일본기원의 프로기사로 입단하였다.
이후 1944년 조선에 귀향하여, 이듬해인 1945년 11월 기도보국(棋道報國)의 원대한 뜻을 갖고, 서울 남산동에 한성기원(漢城棋院)을 설립하여 실질적인 한국기원(韓國棋院)의 원년을 이루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기려 2018년부터 11월 5일을 바둑의 날로 제정하였으며, 매년 바둑에 이바지한 유공자에 대한 표창 및 공로패 수여하고 있다.
그러나 변변한 후원자가 없었던 한성기원은 이후 조선기원, 대한기원, 한국기원이라는 명칭을 변경하며 1967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한국기원 회관이 건립될 때까지 16번이나 이삿짐을 싸야 했으며, 마침내 회관의 기공식 도중 그는 평생의 세 번째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남철 회고록인 ‘세 번의 눈물’에 따르면 그의 첫 번째 눈물은 1941년 18세 나이로 일본기원승단 대회에 처녀 출전을 하여 대회를 치르는 도중 나라를 잃고 친구도 없는 타국에서의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화장실에서 흐느껴 울 때가 된다.
두 번째 눈물은 1950년 6월 그의 나이 27세인 한국전쟁 당시 대한기원이 포화로 쑥대밭이 되었을 때, 시커먼 잿더미 속에서 자식과 같은 바둑알들을 주워 담으며 일본기원을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기원을 세울 것을 다짐했던 때가 된다.
세 번째 눈물은 서러움과 쓰라림의 눈물이 아닌 감격의 눈물이었다. 1967년 11월 한국기원 부이사장이었던 그는 기공식 축사를 하면서 감격에 겨워 콧날이 시큰거리며 눈앞을 볼 수 없어 여러 번 연설을 중단했던 때가 된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그의 위대함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는 한성기원의 설립으로 바둑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킨 것이고 △두 번째는 일본어 일색인 바둑 용어를 우리말로 순화시킨 작업으로 국내 최초의 바둑 입문서인 ‘위기개론(圍棋槪論)’을 비롯한 ‘사활의 기초’, ‘행마의 급소’ 등 불후의 바둑 이론서를 잇달아 집필한 것이며 △세 번째는 순장바둑 폐지, 프로기사 제도 도입, 바둑 기전 창설 등의 실질적인 바둑 발전사업이 된다.
그의 가문은 국내 최대의 바둑 명가로 조카인 조상연 5단과 일본에서 활약 중인 조치훈 9단이 있으며, 큰형의 외손자인 최규병 9단과 이성재 9단 등이 있다. 이처럼 방계가족의 프로 단수를 합치게 되면 40단을 훌쩍 넘는 ‘조남철 바둑 패밀리’를 형성하고 있다.
국수는 대한민국에서 바둑의 고수를 일컫는다. 2018년 국회에서 열린 제1회 바둑의 날 행사에서 총 7명의 기사인 조남철, 김인, 조훈현, 서봉수, 조치훈, 이창호, 이세돌이 국수로 추대되었다. 이와 별도로 2006년 그는 이미 한국기원/동아일보로부터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바둑 국수 칭호인 대국수 칭호를 받았다.
또한 2019년 일본기원은 그의 생애에 “조카인 조치훈 9단과 전 국회의원인 조훈현 9단의 일본유학을 지원하는 등 한·일 바둑 발전에 지대한 공로가 있다.”라며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과 함께 일본 바둑의 전당에 헌액하였다.
평생을 기도보국이라는 일념으로 살아 온 그는 세 번의 눈물을 흘리면서 오로지 바둑만을 생각하였으며, 오늘날 한국 바둑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교두보를 세워 놓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위대한 바둑인이었다.
이병두 용인대학교 AI학부 교수,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