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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민족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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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민족노래
  • 전민일보
  • 승인 2021.07.0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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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 민요인 최초의 가곡 홍난파의 창작곡 봉선화는 일제강점기에 압박과 수난을 당했던 설움의 상징이자 우리 민족의 노래였다.

우리 민족은 선현들의 얼과 역사가 깃든 아리랑이나 봉선화를 즐겨 불렀다.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항일정신의 지주로 삼았던 까닭이다.

동족상잔의 애환이 서린 우리의 소원은 남·북한을 초월해서 재외 교포들까지 부르는 우리 민족의 노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국민애창곡들이 정부와 위정자들에 의해 금지곡이란 굴레가 씌워졌다.

예컨대 <비 내리는 호남선>은 1956년 당시 신익희 대통령 후보가 호남 유세를 하러 가다가 의혹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자 국민이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불렀던 노래였다.

위정자들이 잽싸게 금지곡으로 정했지만, 현재까지도 국민애창곡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변명해야 할까.

1970년대는 위정자들의 비위에 거슬리거나 대중 집회를 부추긴다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국민애창곡에 금지곡이란 굴레를 씌우기도 했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 신중현의 <아름다운강산>,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 등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가수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도 일본 눈치를 살피던 우리 정부에 의해 1983년에 금지곡 반열에 올랐다.

국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4개월 만에 슬그머니 원점으로 돌려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가수들의 애창곡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억압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상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국광복 66주년을 맞아 KBS가 기획한 가요무대에 출연했던 인기가수들의 애창곡이 그랬다.

김연자는 14살 때 광주에서 상경하여 미아리고개를 넘어 다니며 고생했던 일을 잊을 수 없다며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열창했다.

김용임은 아버지가 생전에 약주를 드실 때마다 불렀던 한국전쟁의 상흔이 깃든 <녹 슬은 기찻길>을 부르는 효녀 가수였다.

혼혈가수 윤수일은 한국전쟁 때 혼자 월남하여 고생하신 어머니의 한을 달래주려고 <전선야곡>을 애절하게 불러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우리의 소원>과 함께 민족화합의 상징으로 일컫는 <아리랑>에 대한 우리 국민의 애정이 너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국에서 생뚱맞게 아리랑을 조선족이 불렀던 전통 민요라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리랑>에 대한 정확한 의미조차 정립하지 못하였다. 그뿐 아니라 고구려사를 왜곡한 중국 동북공정 음모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동북공정의 목적으로 우리에게 <아리랑>에 대한 관심을 두게 해준 중국의 학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도대체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가.

국경일 때마다 우리 민족의 노래와 국민애창곡이 울려 퍼지거나, 비바람에 훼손된 채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 선조들에게 죄를 짓는 심정이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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