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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에서 산외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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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에서 산외 가는 길
  • 전민일보
  • 승인 2021.06.24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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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동에서 산외로 가는 고개 너머 한편에 무덤이 있다. 김개남(金開南)의 묘다. 근처엔 김개남 생가도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조성된 봉분엔 아무도 없다. 전봉준(全琫準), 손화중(孫華仲)과 함께 동학농민군 3대 수장인 김개남의 최후는 앞선 두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잔혹했다.

서울로 압송되어 정식재판을 받고 교수형을 당한 전봉준이나 손화중과는 달리 김개남은 전주서교장(현 다가공원)에서 즉결처형 된다. 참수된 머리는 서울에서 효수되는데 당시 이 장면을 목격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의 증언에 의하면 바닥에 떨어진 김개남 머리를 개가 물고 다녔다고 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전주에 남은 그의 나머지 시신은 해체된 후 제물(祭物)로 바쳐지는 것은 물론 장기 일부는 그를 증오하던 사람들에 의해 먹히는 엽기적인 일까지 생긴다.

왜 유독 김개남에 대해 이토록 잔인했던 것일까? 그것은 일정부분 김개남이 초래(?)했다.

김개남은 남원부사 이용헌(李龍憲), 고부군수 양필환(梁弼煥)을 비롯한 관료를 살해했는데 이것은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었다. 더불어 왕권(王權)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그가 제대로 된 재판도 못 받고 그토록 잔혹하게 죽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개남에게 살해된 관료의 아들들은 김개남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낸 후 제사상에 올렸다.

당혹스러운 것은 김개남이 체포되는 과정에도 있다. 그를 관군에 넘긴 인물은 평소 친분이 있던 임병찬(林炳瓚)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김개남은 특별하다. 다른 밀고자와 달리 임병찬 선생은 의병장으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은 위대한 독립투사이기 때문이다.

임병찬 선생은 조국을 위해 투쟁하다 옥중에서 세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유배지에서 순국했다.

김개남은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혁명(革命)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재평가, 오늘 평가하는 과거의 모습을 바라보는 적확(的確)한 오늘의 눈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 본연에 대한 질문까지.

스스럼없이 평화애호민족을 자처하는 한국인은 적어도 대외적인 부분에서는 그에 합치하는 모습을 보여 왔고 지금도 그렇다. 외국인노동자의 권익옹호에 대해 이토록 적극적이고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대내적인 모습을 보면 반드시 그렇진 않다.

적잖은 선인(先人)들은 왜 ‘한국인이 극도로 잔인하다’고 했던 것일까. 분단이 되었을 때 그들은 이런 걱정을 했다. “분단은 필연코 전쟁을 부를 것이고 한국인의 잔인함이 그대로 나오게 될 것이다.” 3년 동안의 6·25 전쟁기간 죽은 한국인의 수가 2차 대전 때 희생된 일본인의 수보다 많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윤치호(尹致昊)는 조선인에게 결여된 것 중 하나로 호전성(好戰性)을 얘기하고 있다. 물론 그 대상은 대외관계에서이다. 그 역시 조선이 대외적으로는 너무 미약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극도의 잔인함을 보인다고 한탄하고 있다. 일본과 청(淸)을 비롯한 대외관계에서는 그토록 평화공존을 얘기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왜 그토록 잔인하게 서로를 죽여야 했던 것일까.

현재 우리에겐 앞의 모든 것이 옛 이야기일 뿐일까. 나는 섬뜩하다. 옛 그 일이 오늘이나 내일이 땅에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없어서이다. 서로에 대한 말의 저주는 김개남이 왕의 관료들에게 휘두른 칼날의 예리함에 결코 뒤지지 않아 보인다. 그것은 마치 성냥불을 기다리는 다이너마이트의 모습과도 같다.

현존하는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형과 동생사이에서조차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 현실이 지구상 다른 어떤 나라에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외국인근로자가 콘테이너에서 생활한다고 걱정하는 한국인이 그 콘테이너에서 같이 생활하는 한국농업인에겐 왜 무관심한지도 의문이다.

소박한 기원 하나,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는 일본인과 그렇지 않은 한국인이 말하는 평화의 차이가 해소되는 날을 기원한다. 바로 그날, 한국인은 대외와 대내적 균형을 말할 수 있다.

옹동에서 산외를 넘을 때마다 생각한다. 김개남의 비극은 이제 종결된 역사인가?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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