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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신언서판(身言書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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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신언서판(身言書判)
  • 전민일보
  • 승인 2021.06.23 09: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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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글자 그대로 신체, 말씨, 문필, 판단력으로 이는 원래 중국 당(唐)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네가지의 기준을 말한다.

첫째는 인물이 잘나야 한다. 사람의 얼굴은 영혼의 통로이다. 얼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얼굴과 그 사람의 내면이 상당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생김새와 말투에서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이 어느 정도 나타나 있다. 따라서 관상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눈이다. 사람의 정기는 눈에서 표출된다. 관상을 볼 때 70%는 눈을 보는데, 그 사람의 운을 말해주는 게 눈빛이다. 성공할 수 없는 얼굴을 가졌는데도 눈에서 빛이 난다면 뭘 해도 잘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관상은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피부나 목소리, 체취까지도 종합적으로 보지만 중요한 부분은 눈이다. 따라서 아무리 신분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도 풍채와 용모가 뛰어나지 못할 경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둘째는 말(言)을 잘해야 한다.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말을 잘 해야 한다. 특히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약장수처럼 ‘말빨’이 센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니다. 제대로 알아야 말도 잘할 수 있다. 아울러 논리적이어야 하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사람들을 웃기는 유머도 있어야 한다.

물론 말을 막힘없이 잘 하고 언변이 능숙한 사람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공자도 말 잘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했다고 한다. 말을 재미있고 현란하게 늘어놔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빠져들게 하여 요점을 흐려놓는 사람들은 사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로 먹고사는 각종 강사, 대학교수, 변호사들의 가장 큰 무기는 언어이다.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말에 조리가 없고, 말이 분명하지 못했을 경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게 되기 십상이다.

셋째는 글(書)과 글씨를 잘 써야 한다. 옛사람들은 글씨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그래서 멋들어지게 쓰는 붓글씨를 선호했던 것이다. 필적이란 그 사람의 체화된 습관이기에 짤막한 메모에서도 그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요즘은 손글씨를 잘 쓰지 않는다.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누르고 있으니 종이에 글을 쓰는 일이 별로 없다. 업무상 일은 사내 메신저, e메일을 통해서 한다. 그래서 그럴까, 요즘 대다수 학생들의 글씨가 악필이 되어간다.

넷째는 사물의 시비를 가릴 수 있는 판단력(判)이다. 판(判)이란 사람의 문리(文理),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처리하는 능력을 말함이다. 판단이 정확하고 빠르면 그만큼 성공의 길로 갈 수 있고 판단력이 나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설사 기골이 장대하고 말을 잘하고, 글씨에 능해도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능력이 없으면, 그 인물됨이 출중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관리임용 제도인 신언서판이 정치권에 갑자기 소환됐다. 발단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방명록에 쓴 글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지난 11일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자료를 열람하고 방명록에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썼다.

이를 본 누리꾼들은 “‘지평을 열다’가 옳은 표현이다. ‘지평선을 연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는 반응을 내놨다. 또 방명록 문구 중 ‘성찰을 깊이 새기겠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역시 어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찰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핀다는 뜻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자신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핀 것을 윤 전총장이 새길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이 방명록에 비문을 쓴 것을 두고 비판과 견제가 이어지면서 일부에선 “국어도 모르는 자가 무슨 대통령을 꿈꾸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여당에선 야당의 경선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의 문제가 더 드러날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한 14일 취임 첫 행사로 대전 국립현충원을 방문, 방명록에 “내일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썼다. 여기서 헌신의 주체가 누구인지 모른다. 대한민국 다음에 “먼저 가신 님”, 또는 “님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겠다”고 썼으면 문제가 없다.

방명록의 글씨와 문장으로 이준석 대표와 윤 전 총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방명록의 문장과 언어가 두 사람의 본바탕이나 기본인식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특히 윤 전 총장은 은퇴한 검찰총장이 아닌 차기 유력 대선후보이기 때문이다. 다만 요즘 방명록에 한자 휘호를 쓰는 정치인은 드물다. 한자를 잘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유명 정치인들도 하나같이 한글로 쓴다. 한자로 쓰게 되면 그 사람의 학식과 정신적 수준은 물론 대인의 면모와 품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신영규 전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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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06-24 01:58:20
중요한것은 당나라때 국자감이란 유교대학과 과거제도가 있어서, 여기를 거쳐야 관리로 쉽게 등용되는 제도. 신언서판 네가지 모두 흡족해야 함.

㉡당나라 때에 이르러서도 ‘신•언•서•판’으로서 자격을 따지고 공로를 헤아려서 벼슬에 의망했다. 여럿을 모아놓고 그 서•판을 시험해보고, 서•판 시험이 끝나면 그 신•언을 전형한다. ; 至唐之選法 以身言書判 計資量勞而擬官 集衆而試觀其書判 已試而銓察其身言 [성호사설 경사문 당지용인]
.출처: 신언서판 [身言書判]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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