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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필벌(信賞必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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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필벌(信賞必罰)
  • 전민일보
  • 승인 2021.06.0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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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군 18전투비행단 보급대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 당시 대대에서는 매달 모범사병 한 명을 선발해 포상하는 제도가 있었다. 난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모범사병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가?

그 의문은 내가 고참이 되어서야 풀렸다. 어느 날 후임 상병이 모범사병으로 선정된 것을 보고 업무를 담당하던 병사에게 농반진반으로 물었다. “(웃으며) 장 병장은 아직 모범사병 한 번 못해 봤는데, 김 상병이 선정된 이유가 뭔가?” 고참인 내 물음에 담당자가 진지하게 답했다. “김 상병이 부대 정자를 짓는데 사역병으로 나와 고생한 것을 보고 부사관들께서 추천하셨습니다.” 난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상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는구나.”

정자를 짓는데 참여한 사역병은 물론 김 상병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상은 받아야 할 사람에게 갔다.

내 눈에도 김 상병만큼 성실하게 참여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이후 모범사병 선정에 대한 의구심을 걷었다. 나는 제대 할 때까지 그 영예를 누리지 못했지만 아쉽지 않다. 내게 그런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히 상과 벌은 그에 합당한 사람에게 적절한 정도로 가야 한다.

현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유공자가 있다. 김 상병이 모범사병에 선정된 것이 그렇듯 마땅히 대상이 되어야 할 유공자에 대해 사회는 그에 적절한 예우와 포상을 해야 한다. 선정의 합당함과 예우와 포상의 적절함에 대한 신뢰는 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필수덕목이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기묘명현(己卯名賢), 중종(中宗) 이후 조선 사대부에게 그것은 시대의 양심이자 개혁의 상징이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는 표면적으로는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의 공신들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개혁 사림파를 숙청한 것이지만 실상은 중종이 기획한 친위쿠테타다. 여기서 공신의 역할은 조연이지만 주연인 국왕의 이해와 합치한 영역 안에 있기에 그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여기서 스모킹 건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위훈삭제(僞勳削除)다.

반정(反正) 성공에 따라 수많은 공신이 양산되었는데 그 선정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중종의 존재근거가 공신에게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위훈일지라도 자신을 왕으로 옹립한 세력의 훈적을 박탈하는 것은 중종의 정치적 부담을 너무도 크게 하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중종의 입장은 태종(太宗)은 물론 세조(世祖)가 공신을 대했던 것과도 너무 달랐다. 태종과 세조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왕위를 쟁취했다면 중종은 그야말로 공신의 등에 업혀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헬조선과 개한민국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은 더 이상 국가나 민족이 아닌 개인의 문제를 얘기한다. 어쩌면 그 자체가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공동체의 발전을 나타내는 지표인지 모른다. 봉건잔재와 식민통치 그리고 군사정부를 불과 한 세기만에 완벽하게 극복하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한 자긍심은 어디에 있단 말인 가. 지구상 그 어떤 공동체가 이토록 역동적인 역사를 구현했단 말인 가. 그럼에도 왜 우리는 자조(自嘲)와 탄식(歎息)을 말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의 일부는 여전히 조광조로부터 찾아야할지 모른다.

조광조가 위훈삭제 대상으로 언급한 공신이 오늘날 유공자의 모습으로 남아있다면 그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조광조가 처한 만큼의 위험을 내포한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에 나선 386 청춘이 어느덧 꼰대의 대명사 586이 되었다. 자신들이 이룬 성취에 자긍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셀프 유공자가 되겠다는 소리를 숨기지 않는다. 이제 기득권 세력이 된 그들을 향해 꼰대라고 하는 2030이 말하는 헬조선과 개한민국에 대한 적확성(的確性) 여부를 말할 순 없다. 다만, 그런 말이 태어난 것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분명 존재한다.

비판했던 옛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준 교훈을 망각한 탓이다. 평범하지만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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