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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의 무대 다가사후(多佳射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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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의 무대 다가사후(多佳射候)
  • 전민일보
  • 승인 2021.06.08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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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천변 물이랑을 낀 한 무리 백설같은 이팝나무 꽃잎이 하얀 나비가 군무를 추는 듯 휘날리는 풍정이 완산승경의 다가비설(多佳飛雪)이다.

다가사후(多佳射帿)는 전주 부성의 무관과 한량들이 호연지기를 겨루는 활쏘기를 묘사한 전주 10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이렇듯 선조들은 다가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삼현육각 선율에 기녀들의 연연한 춤 가락이 옥색 바람에 버들가지 쓸리듯 공중에 묻히는 풍류를 즐기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다가산은 일제 강점기 황민화 정책으로 전주 백성들의 눈물과 아픔이 서린 공간이다.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를 내세웠던 탓이다.

1914년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전주 부성서문 밖에서 잘 보이는 다가산 정상에 신사를 세우고, 신사 참배를 위해 길을 닦고 참궁로參宮路라했다. 전주 백성들이 일제의 강요에 시달려 신사 참배를 위해 건너다녔던 다가교는 대궁교大宮橋로 불렀다.

한국 시문학의 거목 가람 이병기 시비와 한국전쟁 때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호국충령비가 위치한 곳이 바로 신사 터였다.

다가산 북쪽에 마주해 있는 전주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3.1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두학교는 1937년 폐교라는 아픔과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전주 백성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참 교육의 전당으로 영원히 남아있다.

다가산은 조선의 전통문화와 더불어 호남 최초의 근대병원인 예수병원, 호남 최초의 근대학교인 신흥학교 등 조선 말기의 근대유적들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이 전주 부성 시절 다가산 부근인 전주교 중간에서 매곡교까지 천변 쪽에는 판자촌과 종이방, 주점, 국숫집, 옷집, 기름집 등 온갖 가게들이 양쪽으로 꽉 들어찼다.

다리 주변에는 번데기, 우뭇가시, 개떡, 풀떼기, 고급 요리였던 녹두 부침 장수들이 많았다. 요즘처럼 소매치기나 도둑이 없었던 순박했던 시절이었다.

서천교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간판 없는 책방 거리가 있었다. 전주 천번에 제방을 쌓기 전에는 그리 넓지 않아서 초가집들이 빼곡했다.

서천교 주변에는 매곡교와 완산교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었다. 전주 부성의 서문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성벽의 중간지점에는 여인숙과 여관이 즐비했다.

다가교는 한때 사마교로 불렸다. 지금의 신흥중. 고등학교 자리에 사직당과 향교, 생원과 진사들의 집회소였던 사마제司馬齊가 있었던 연유다.

다가교는 다가공원에 전주의 대표적 사정射亭인 천양정이 있어서 사정다리로도 통했다. 천양정은 조선 한량들이 활쏘기를 위해 1712년 세웠으나 그만 홍수로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 뒤 다가산 밑에 다가정을 짓고 활터로 사용해오다가 1830년 천양정을 다시 지었다.

다가정은 젊은 한량, 천양정은 원로들의 무대였다. 다가정, 천양정, 군자정 등 세활터의 활쏘기 모임은 전주를 대표했다. 하지만 일제의 압력으로 그마저도 폐쇄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를 아쉬워했던 전주 한량들이 우여곡절 끝에 1912년 천양정을 복원하였다.

천양은 '버들잎을 뚫는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의 명궁인 양유기由基의 백보천양百步字揚의 고사와 태조 이성계 고사에서 유래했다.

이렇듯 천양정은 조선의 명궁을 배출할만한 전통을 갖춘 활터라는 뜻이 있었다.

강당재는 구 예수병원 좌측 고개로 주변에 있는 화산서원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그 고갯마루 근처에는 인민군이 학살했던 움푹 파인 터가 있어 항상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다가공원의 방공호는 1968년 이후 전시상황을 대비해 군인과 경찰, 도청 등이 지휘 할 수 있도록 만든 땅굴이다.

전주 부정 시절 남에서북서로 반원형으로 휘감아르는 전주천을 따라가면 다가전의 바위 사랑이 냇물에 불쑥 내민 수려한 절경과 울창한 숲이 자랑거리였다.

전주의 역사를 대변하듯 수백 년을 살아온 노거수들이 오늘날 다가공원으로 불리는 다가산은 동쪽 전주 천변의 벼랑을 깎아 도로와 인도를 내면서 선조들이 자랑거리로 삼았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태를 보면 1940년 고노에 후미로 총리가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려고 내세운 팔굉일우구와 일제강점기 다가산에 신사를 세웠던 황민화가 떠올려진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제 강점기에 저질러진 내선일체와 황국민신화의 뼈아픈 역사다.

여기에 선인들이 완산승경과 전주 10경으로 꼽있던 중장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후손들이 다가산의 수려한 풍광을 마구 시켜 놓았으니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하늘같이 여겼던 선조들에게 이라 명한단 말인가.

3.1절이나 광복절도 무심코 지나치거나 자연훼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오늘의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선조들의 풍류 무대이자, 전주 백성들이 일제의 황국신민화에 시달렸던 다가공원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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