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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는다. 장인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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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는다. 장인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
  • 김명수 기자
  • 승인 2021.05.25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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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 소양면 만덕산 자락에서 조상의 전통을 잇는다. 화심전통도요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위치한 전통화심도요.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에 위치한 전통화심도요.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은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수려하고 오묘하다. 

흙냄새와 열기, 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가마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념무상,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자연이 내어준 내 자식들이 저 가마 안에서 타오르는 열기를 견디고 있다는 현실을 마주 보게 된다.

같은 배에서 태어나도 똑같은 자식이 없다더니, 같은 손에서 태어난 그릇인데도 똑같은 게 없다. 활활 타오르는 가마를 보고 있으면 이번엔 어떤 놈이 태어날지 자못 설렘도 온다.

도공은 다섯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산고를 이겨내고 건강하게 태어날 자식을 기다리듯, 뜨거운 열을 견디고 반듯하게 태어날 그릇을 고대한다. 

무아의 경지에서 설렘으로 바뀌는 시간. 가마에서 꺼낼 때, 그 붉은 뜨거움이 식어간다.

희면서도 푸르다. 가장 완벽하게 채워져 있으면서 가장 완벽하게 비어 있다. 그 자체만 두고 봐도 아름답지만 무엇을 얹어 놓아도 도드라지지 않고 수수하게 빛을 받아들인다.

어느 곳에 올려놓아도, 어떤 것을 올려놓아도 가장 이상적인 조화.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가 생각하는 陶瓷(도자)다.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는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
전통방식으로 도자기를 빚는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

완주 소양면 화심리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전통화심도요.

새벽녘 이슬이 모여들어 물소리를 만들고, 산기슭에서는 흰 안개가 도요로 흘러 내려온다.
기슭에서 시작된 이른 여름의 향기에 취해 흙 밟고 물레차 사발 빗기에 더없이 한적한 곳.

세상이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도, 시간이 멈춘 듯 전통방식으로 35년 넘게 전통도자기 외길을 걸어온 장인이 있다.

가슴으로 도자기를 빚는 窯天(요천) 임경문(58) 도예가가 주인공이다.

임 도예가는 한 줌 흙에 지나지 않던 재료에, 천연 유약을 머금게 하고 1300도가 넘는 가마 안에서 선조들의 전통방식 그대로 빚으며 수려한 청자로, 질박한 분청자로 탄생시키고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옆에 시냇물이 흐르는 고즈넉한 연못 역시 임경문 도예가의 손에서 완성됐다.
자연과 함께 하는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옆에 시냇물이 흐르는 고즈넉한 연못 역시 임경문 도예가의 손에서 완성됐다.

그가 힘든 도공의 길로 들어선 것는 35년 전. 청화백자로 이름난 고창 고수자기 라희술 선생을 만나면서 도예가로서 외길 인생이 시작됐다.

3년간 고수자기에서 전통 도자 수비와 꼬막 조각 투각 성형 등을 배운 그는 강진청자로 유명한 광주 무등도요를 찾아 지금은 작고한 조기정 선생으로부터 4년 동안 청자 수비와 성형, 그리고 전통 유약을 재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농부가 벼를 일구듯 도자기 또한 쉼 없는 작업입니다. 초겨울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배낭을 짊어지고 옛 도요지였던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흙을 채취해 연구하고 그렇게 온 산을 더듬어 체험한 경험은 저의 스승이 되고 지침이 되었습니다”

임 도예가는 이후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다시 4년간 분청자 제작과 전통가마 수업을 받으면서 가마 만들기와 불 조절을 배웠다. 

대지가 아직 얼기 전에 흙을 골라 배합을 하고 숙성을 시키고 장작불 작업을 위해 2~3개월씩 적송을 구해 장작을 패서 준비한다. 발 물레질로 작업을 하며 작품을 준비하고 날이 풀리면 직접 만든 유약에 각기의 흙에 맞는 옷을 입혀 가마터로 향한다.

닷새를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며 불길을 잡는다.
닷새를 꼬박 뜬눈으로 지새우며 불길을 잡는다.

“꼬박 닷새씩 잠을 쫓으며 불을 때고 그 안에서 불꽃이 작품을 휘감으며 어우러질 때 어찌 그 모습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있겠습니까? 가마 안에서 열락의 세계를 한순간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시점을 놓치지 않고 화마를 잡아야 하는 작업입니다”

이후 완주 위봉사 인근에 전통 가마를 짓고 도자 작업에 몰두했으나 IMF 여파로 가마터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자 부안 우동리로 다시 옮겨 우동도요를 세우고 10년을 작정하고 칩거하면서 천연 유약 개발에 몰두했다. 

“우동리에 8칸 전통가마 2기를 짓고 13년간 작업해온 시간은 어쩌면 내 자신에게 주어진 혹독한 수련의 시간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8년째 되는 해에 부친의 부음소식을 접했지만 상도 치르지 못하고 오직 유약 연구에만 전념한 결과, 마침내 장작 가마에 맞는 천연 유약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어요”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전통화심도요 작업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손에서 완성된 가마터. 만덕산 자락 끝에서 맨손으로 14칸 가마를 짓고 옛 도공이 있던 자리에 다시 불을 붙였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손에서 완성된 가마터. 만덕산 자락 끝에서 맨손으로 14칸 가마를 짓고 옛 도공이 있던 자리에 다시 불을 붙였다.

임 도예가가 이곳에 정착한지는 9년 전. 소양면 화심리 가마터에 마음이 닿아 만덕산 자락 끝 이슬이 몰골을 만든 땅을 북돋고 다져 맨손으로 14칸 가마를 짓고, 옛 도공들의 흔적이 있는 자리에 다시 불을 붙였다. 

기계는 쓰지 않고 흙이 도자기로 완성되기까지 전통방식 그대로 재현해낸다.

“제 손으로 하나 하나 전통방식으로 만들다 보니 첫 불을 지피기까지 2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평생을 해도 모자랄 도자기 공부지만, 이곳에서 옛 조상들이 오로지 도자기의 순수한 열정으로 작품의 세계에 정진했던 것처럼 저 또한 그들의 정신과 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삶이 녹아있는 작품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삶이 녹아있는 작품들.

그는 한국 분청사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일본에서 2차례 전시회를 갖고 자신의 철화 사발 3점을 동경대에 기증해 지금도 전시돼 있다. 

국내에선 도자엑스포에 전북대표로 출품하고 일본과 한국 방송 출연과 한국을 대표하는 사기장 도공 34인 등에 등재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전시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선천적인 청각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작품 출품을 못했기 때문이다.

가마에 100점을 넣으면 마음에 드는 4~5점을 빼고는 다 깨버리는 지독한 장인 정신은 늘 그를 생활고에 시달리게 한다.

그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알음알음 찾아와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이에게 자신의 작품을 판매할 뿐, 도자기를 빚는 손은 때로는 농부의 손이 되어 자연과 벗 삼아 함께 살아간다.

주위의 인간문화재 등록 권유에도 더 정진해 백자와 청자를 완성하고 기회가 되면 재현해낸 전통 도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이를 세계화하는데 힘쓰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작품들.
窯天(요천) 임경문 도예가의 작품들.

“한 줌의 흙이 순수하게 자연이 준 유약을 머금고 불 속에서 하나가 되어 가마 한 칸 한 칸에서 한 점 한 점이 서로 다른 색의 옷으로 태어나는 것을 바라보면 새삼 자연의 이치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려한 청자가 되었든 질박한 분청자가 되었든 그 것은 도공의 손에서 거짓없이 불에 거르고 비워서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작업입니다. 저는 옛 전통 방식 그대로 우리의 도자기를 재현해 내겠다는 일념으로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을 지키면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혼신을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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