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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진수 ㈜모터뱅크 회장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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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진수 ㈜모터뱅크 회장을 만나
  • 이민영 기자
  • 승인 2021.05.1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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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생각하며, 고향 부안에 334억원 투자
이진수 (주)모터뱅크 회장
이진수 (주)모터뱅크 회장

㈜모터뱅크(회장 이진수)는 1995년 창업해 오토바이 분야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달 21일 부안군·전라북도와 부안3농공단지에 이륜차(오토바이)·환자용 차량 제조업 투자협약을 체결해 관심을 끌었다.

부안3농공단지에 입주할 이 회사 이진수 회장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서 태어나 감교초 12회 출신으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본지는 이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부안3농공단지 투자계획(334억)을 결정하게 된 배경과 기업의 혁신 경영에 대해 들었다.

“‘68년도에 달랑 430원을 가지고 고향을 떠나면서 나는 꼭 성공해 내가 태어난 고향에 와서 그럴싸한 사업을 하겠다는 각오를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회장의 생각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어쩌면 그의 출중한 애향심과 각고의 노력, 그리고 굳은 결심이 그가 출향 50년이 훌쩍 넘긴 시점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고령화된 어르신들이 부안을 지키고 있다‘며, ’부안에 고용창출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들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3농공단지의 기반 시설이 다 돼 있으니 부안에 투자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말은 들은 이진수 회장은 2년의 장고 끝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당시 그는 권 군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주위의 반대의견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즉시, 부모님 묘소로 달려가 혁신적 생각으로 미래를 상상했다.

이 회장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작고하신 부모님과의 묵언대화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힘들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 때마다 부모님을 찾았다고 한다.

어릴 적 그는“잔돈이 모여야 큰 돈이 된다”그리고,“잔돈을 잘 못쓰면 후회가 적지만, 큰 돈은 잘못 쓰게 되면 더 큰 후회가 있다”는 부친의 말씀을 들으며 성장했다. 이 회장이 근검절약하고 효심이 깊게 된 것은 이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진다.

4월 21일 부안군·전라북도와 부안3농공단지에 이륜차(오토바이)·환자용 차량 제조업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모습
4월 21일 부안군·전라북도와 부안3농공단지에 이륜차(오토바이)·환자용 차량 제조업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모습

이 회장은 어릴 적 서울에 먼저 올라간 누나 덕택으로 서울에 정착하게 돼,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산정’이란 식당을 하면서 큰 돈을 벌었다.

당시 부안에서 잡은 생고기(소,돼지)를 받으면서 피 묻은 잡업복을 입고 열심히 일을 했다. 이를 본 고객들이 감동이 됐던지 입소문을 내 손님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호사다마라 했듯 큰 돈이 모이자, 어느 날 오토바이 수입상 대표(후배)에게 당시 5억 원을 차용해 줬는데 그가 3개월 만에 외국으로 도주해 그 돈을 날리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이 회장은 오토바이 업체를 인수하게 돼 오토바이 사업자가 됐다. 생각지도 않은 오토바이 분야였다. 이게 이 회장의 창업스토리이다.

이제 오토바이 전문가가 된 이 회장은“이동 간 교통수단인 오토바이에 대한 저변 확대와 오토바이에 대한 좋은 선입견을 갖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이륜차 뉴스’란 신문을 발행하고, 한국수입이륜차환경협회 회장을 맡은 건 이륜차에 대한 저변확대와 좋은 선입견을 갖게 하는데 있었다.

이진수 회장은 오토바이 사업을 하게 된 배경과 이륜차에 관한 얘기를 들려 줬다.
이진수 회장은 오토바이 사업을 하게 된 배경과 이륜차에 관한 얘기를 들려 줬다.

그는 이륜차는 8 ~ 90년대 시작으로 상승기가 이어져 향후 2030년도까지는 전망이 좋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면서 소비자에 대한 신뢰와 가격 경쟁력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현재까지는 빅바이크 2~6천만원대 레저용 오토바이를 취급하였는데요.앞으로는 100~200만원대 생계형 오토바이를 비롯해 고령화 시대에 발맞추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발과 손이 될 수 있는 전동 3륜과 4륜을 중점적으로 할 것입니다”며, 향후 비전을 펼쳐 보였다.

이 회장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몇 가지 더 전해 줬다. 감교초 5학년 때 가을 수학여행 시 1~2반 학생 모두가 수학여행을 가는데 본인 혼자만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부친은 무학이지만, 한학에 능하고 명필가였다.“그렇기 때문에 내가 수학여행 가는 것쯤을 이해하실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날‘고구마 깨기’일손돕기에 나를 데리고 가는 바람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며, 아쉬워했다.

그 무렵은 절대 빈곤시대였다. 이 회장이 빈농의 아들로서 아픔을 겪은 사연은 수 없이 많았다. 그는 헝그리 정신으로 그 고단함 속에서도 지혜와 강인함을 얻었다.

이 회장의 자녀들은‘인성이 잘 다듬어진 사람이 되라’는 그의 말을 듣고 성장했다. 그런 까닭에 이 회장의 자녀(1남·1녀)는 예의 바르고, 근면 성실하다.

장남 이정동 씨(40세)는 16년 전 아주 어려서부터 회사 일에 관여해 지금은 대표이사에까지 올랐다. 이 대표는 학문보다는 실용적으로 외국어 공부에 치중해 능숙한 언어로 글로벌 비즈니스에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진수 회장은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 장학재단을 비롯 공공에, 또는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다. 문 모씨는 "이 회장을 칭송하며, 사업이 잘 되도록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진수 회장은 열심히 사업을 하면서 장학재단을 비롯 공공에, 또는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다. 문 모씨는 "이 회장을 칭송하며, 사업이 잘 되도록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장녀는 영국 유학 후 전문분야에서 활동했다. 또한 사모와의 만남은 감동스런 러브스토리가 있다. 연애 당시 대졸 출신 아가씨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 회장을 인도하고 지혜를 나눴다. 또한 한자·영어를 눈뜨게 했고, 사무를 도왔다.

지난 21일, 체결한 ㈜모터뱅크의 부안 투자 협약이 끝나 이제 전북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했다.

특히, 이 회장의 꿈이랄 수 있는 고향(부안3농공단지)에 친환경 기업인 이륜차 제조업 등의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게 돼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저는 총 자본금 430원으로 시작한 인생입니다. 전부를 잃어도 저는 (사람)재벌에 속합니다. 여우 같은 부인과 토끼 같은 딸, 황소 같은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손녀들이 있지 않아요”

이 회장과의 인터뷰는 휴머니티가 있고, 위트가 넘쳤다. 그는 자기 노력보다“참 운도 좋고 참 복도 많았다”며 둘러댔다. 하지만 그가 흘린 땀방울은 그의 노력과 지혜를 담고 있다. 이 회장과의 짧은 대화 속엔 그의 진솔함과 인간미가 가득 차 있었다.

서울 =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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