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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을 위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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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진’을 위한 노래
  • 전민일보
  • 승인 2021.04.09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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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유학 시절 아르바트 거리를 지나다 아기곰을 파는 노파를 만났다. 가격은 미화 300불에 불과했고 아기곰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사려고 지갑을 꺼내자 아내가 황급히 말렸다.

그런 아내에게 “곰이 너무 예쁘게 생겼잖아, 그리고 나중에 웅담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내는 “아파트에서 어떻게 곰을 키워? 웅담 얻기도 전에 잡아 먹히겠다”라며 정색했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2’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미스트롯2’는 ‘전유진의 눈물을 딱아주는 양지은’ 사진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긴 것과 같이 탈락한 전유진이 ‘미스트롯2’를 이겼다. 양지은은 전유진의 분신이다. ‘미스트롯2’는 실리와 명분 모두 잃었고, 전유진은 국민을 얻었다.

전유진은 5주 연속 대국민 응원투표 1위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1위도 보통 1위가 아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해보면 전유진 득표율은 나머지 참가자 전체와 비슷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미스트롯2’는 인기가수 혹은 대중가수를 뽑는 경연대회이다. 수학과 과학처럼 계량화된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대중이 싫어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전유진이 탈락한 것과 탈락했던 양지은이 우승한 것은 희대의 코미디였다. 그렇다면 ‘미스트롯2’ 제작진과 마스터는 전유진을 왜 버렸을까? 그 비밀은 전유진의 ‘상업적 가치 부재’ 때문이다.

첫째, 전유진에게는 ‘절박함’이 없었다. 타 참가자들과 달리 그는 전업가수가 아니었다.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배수진을 쳤던 성민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전유진은 거의 모든 무대에서 몇 번의 연습만 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도 ‘세이렌의 환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천상의 명곡을 만들어 낸다. 하늘이 내린 천재 중의 천재이다. 하지만 ‘미스트롯2’ 입장에서는 ‘절박함’이 부족한 중학생에게서 커다란 상업적 이득을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 전유진은 학업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전유진은 소속사가 없었다. 예선 3차 경연자 25명 중 전유진만 유일하게 소속사가 없는 일반인이었다. 경연이 끝나고 우승자를 콘서트나 방송에서 최대한 활동하기 위해서는 전문 소속사와의 협의가 필수적이다. 전유진의 천재성을 알아본 10여개의 기획사와 작곡가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거절하는 오류를 범했다. 전유진에게 아직까지 노래는 취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실력이나 인기가 압도적으로 우월했던 전유진이 탈락한 과정은 공정하지 못했다. 팀메들리에서 곡 선정, 가사와 역할 배분에서 눈에 띨 정도로 불리했다. ‘초등생보다 못한 중학생’이란 비교를 통해 의도된 상징조작을 가했다. 16세 소녀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모멸감이었다. 한 팬은 “60 평생 가장 경악한 두 가지를 뽑으라면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과 전유진 탈락”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팬들의 분노에 놀란 몇몇 마스터는 전유진에게 간접적으로 사과했지만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스트롯2’의 공식적인 사과 없이는 ‘집 나간 집토끼’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전유진은 절대음감의 소유자이고 천상의 음색으로 절대음감을 표현한다. 그는 방탄소년단 버금가는 위대한 가수가 될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의 반대말은 ‘게으름’이다. 전유진 말대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SM, JYP,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글로벌 기획사에서 ‘상업적 가치’를 갈고 딱아야 한다. 만약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헤치고 나와야 한다.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전혀 다르다. 전 세계로 나아가겠다고 하고, ‘포항 가 살자’를 부른다. 가수가 되고 싶다면서, 인문계고 진학 준비를 한다. 흠 없는 위로하는 노래를 하겠다며 수학과 과학책을 편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격이다. 일찍이 서태지는 ‘교실이데아’에서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라고 일갈했다.

축구천재 마라도나가 공무원이 됐다면 그것은 인류의 비극일 것이다. 학업에 전념해 황금 같은 청소년기를 놓친 비운의 골프천재 미셸 위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김연아와 손흥민은 부모 덕분에 청소년기를 현명하게 보냈고, 위대한 스타가 되었다.

전유진은 곰이다. ‘시꺼먼 교실’에서 거대한 곰을 사육할 수 없다. 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뛰어다녀야 한다. 만약 내가 곰을 아파트에서 키웠다면 곰에 대한 커다란 죄악일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웅담에 대한 탐욕’에 헛웃음이 나온다.

한승범 한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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