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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惡魔)의 변(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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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惡魔)의 변(辯)
  • 전민일보
  • 승인 2021.03.31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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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소리를 확인하고 싶어 고창 바닷가를 찾아 나섰다. 차 유리너머 펼쳐지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좋다. 빼어나지는 않지만 충분히 예쁘고, 조금은 거칠지만 포근한 산과 들 그리고 바다의 정경 하나하나가 봄을 얘기하고 있었다. 봄은 도둑같이 왔다 멀어진다.

무심히 달리던 어느 순간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생가 안내판이 보인다.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집속에 또 다른 집이 연속되어 있는 모습이 호남의 대표적 양반가 모습이다. 집안끼리 쪽문으로 연결되어 있던 옛 서도 모습이 떠올랐다.

인상적인 것은 또 있다. 안내판이다. 인촌의 업적은 물론 친일 얼룩에 대해서도 건조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개관사정(蓋棺事定)이 무상(無常)하다.

인촌이 죽었을 때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직접 조문한 것은 물론 장례식은 국민장으로 진행되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인촌의 친일 논란에 대해 그를 변호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현재와는 분명 달랐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은 아마도 계속될 것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가 규정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는 당대의 시각을 외면해 존재할 수 없다. 오늘의 명암이 훗날 반전을 맞이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일제치하 윤길중(尹吉重)은 20대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군수를 하게 된다. 친일파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 당대 조선인은 그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한때 주한미국대사 하마평에 올랐던 빅터 차(Victor Cha)의 할아버지만이 젊은 조선인 군수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까. 당시 순사 시험경쟁률은 오늘날 공무원 시험과 비교해 결코 낮지 않았다. 순사 시험에 떨어져 순사를 하지 않았던 사람과 순사의 차이는 과연 무엇인가.

모두가 안중근(安重根)이나 윤봉길(尹奉吉)이 되어야 한다는 얘길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금은 건조하게 당시 조선 민중들이 살아간 현실을 살펴보자.

관련해 서병훈 교수의 고견을 빌려 말하고자 한다. <자유론>을 쓴 밀(J. S. Mill)이 주목한 로마 카톨릭 교회 행사가 있다. 새로운 성자를 인정하는 시성식에 마련되어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악마의 변’을 듣는 시간이다. 비록 악마의 험담일지라도 거기에 조금의 진실이라도 있는지 따져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성인에 대한 시성식에 국한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확신하는 앎과 믿음은 경쟁적인 오류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할 수 없다. 밀은, 대립하는 두 주장의 어느 일면이 완벽한 진리이고 다른 쪽은 틀렸다는 분류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여전히 송시열(宋時烈)에 대한 노론과 소론의 극단적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해 보이는 것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김성수와 윤길중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듯이 우리가 신화 속에 가둬 둔 인물에 대한 여러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악마의 변’ 형태로 다가오기도 한다.

갑신정변 참여와 독립문 건립 그리고 독립신문발행의 공(功)을 바탕으로 해방 후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된 인물이 오늘 국회 청문회에 오른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필라델피아에 묻히고 싶어 한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을 고인의 뜻에 반해 대한민국 국립묘지에 이장한 것에 대한 의문은 또 어떠한가. 

근거 없는 폄훼만큼 과장된 미화도 우리의 눈을 가린다.

우리는 오늘 모두가 독립투사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향해 거침없이 ‘토착왜구’라 지칭할 수 있는 그 담대함의 근거다. 그러한 표현이 혐오와 반인권적이지 않을 필요충분조건은 ‘약자의 민족주의’ 외에 달리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부가적인 의문은 현재 대한민국이 과연 그럴 정도의 나라인가 하는 것이다.

김성수 생가 근처에는 미당 서정주 기념관과 김소희 생가도 있었다. 우리 마음 속 신화로 남은 인물이 ‘악마의 변’까지도 무력화시키길 소망한다.

고창 바닷가 갈매기들의 휴식을 방해한 미안함을 제외한다면 봄을 느끼고 온 행복한 하루였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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