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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와 논리실증주의를 뒤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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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와 논리실증주의를 뒤돌아본다
  • 전민일보
  • 승인 2021.03.25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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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에, 필자와 같은 세대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젊은 시절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철학적 흐름은 아마도 실존주의와 논리실증주의일 것이다.

실존주의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알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한 사람이 이념적 또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살기보다 불안하고 외롭더라도 자기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는 흐름이다.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적 증명이나 경험적 관측에 의해 검증가능한 이론만을 진리로 인정하는 흐름이다.

실존주의는 기존질서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 전후세대 대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렌 키엘케골, 프리드리히 니체, 마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등은 일세를 풍미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다.

필자가 대학교 학부 때 들은 철학개론 강의를 한 분은 당시 전북대에서 서울대로 옮긴 지 얼마 안 되었던 한전숙 교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분이 어느 날 강  중 했던 얘기다.

한밤중에 라디오 음악편지 프로그램을 듣는데 DJ가 피투성이라는 말을 해서 ‘무슨 사고가 났나. 왜 갑자기 피투성이 얘기를 하나’하고 들어봤더니 사람은 우주에 ‘던져져 있는 존재’라는 의미의 실존주의 용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더라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문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묘사를 접하게 된다. 실존주의는 개인의 주관성에 입각한 철학이었기 때문에 선풍적이었지만 오래 갈 수 없었다.

필자는 원래 고등학교 때 문과였지만 대학은 이과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당시 자연과학 대학의 학생들은 논리실증주의 흐름의 철학에 관심이 높았다.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적으로 엄밀한 철학을 하려다 보니, 초기에는 논리적 언어만을 구사하는 언어철학이 주류였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그 대표적인 사람이다.

언어철학이 논리적 한계에 이르자,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의 방법론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과학의 발전이 검증가능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한 발 물러서게 되었다.

수학에서 쿠르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등으로 논리적으로 완벽한 체계란 없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과학의 발전도 어떤 정해진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저서에서 사용한 이래 이제 보통사람도 쓰는 용어가 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도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다.

논리실증주의는 엄밀한 객관성을 추구했지만 인간 인식의 본질적 한계에 부딪혔다. 그래도 논리실증주의는 차선책이며 그 이상의 체계적인 철학은 없을지 모른다.

마치 민주주의가 차선의 정치체제이지만 그 이상의 정치체제가 없는 것처럼. 칼 포퍼 같은 논리실증주의자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실존주의가 파토스적인 철학이라면 논리실증주의는 로고스적인 철학이다. 모든 철학이 그렇듯이 두 흐름 다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철학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전쟁에 준하는 사태이다. 전쟁은 인간에게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이번 코로나 위기는 인류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새삼스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백신개발이라는 과학적 성과에 의해 코로나 사태의 종식에 다가가고 있다.

과학은 불완전하지만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과학과 철학은 원래 한 뿌리에서 나왔다. 우주와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큰 전쟁이 끝나면 새로운 철학의 흐름이 나오듯 코로나 이후 시대에도 새로운 철학의 흐름이 나올 것이다. 새로운 철학에는 그 동안의 과학적 성과를 흡수하는 내용이 실릴 것이다.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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