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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의 전쟁이 가져온 LH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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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와의 전쟁이 가져온 LH사태
  • 전민일보
  • 승인 2021.03.17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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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미국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오후 첫시간 강의에 들어 온 교수가 천장을 쳐다보고 큰 웃음을 터뜨리더니 학생들에게 방금 점심시간에 겪은 일을 얘기해준다.

경제학과의 연구실과 강의실이 있는 건물 앞에 점심때가 되면 핫도그 등을 파는 점심트럭이 와 있고 그 옆에는 바나나, 사과 등 몇가지 과일을 파는 노인이 앉아 있다. 그 교수는 늘 하던 대로 점심트럭에서 핫도그를 산 뒤, 노인에게로 가서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노인에게 가격이 얼마냐고 물으니 50센트 라고 했다.

교수는 “아니, 어제 25센트 주고 샀는데 오늘은 왜 50센트요?”하고 항의조로 물었다.

땅을 보고 있던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교수를 빤히 바라보고, “수요와 공급 아니겠소?” 하였다.

경제학의 대가인 교수는 50센트를 지불한 뒤 자기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선출직 공직에 있을 때 전통시장의 상인들과 대화를 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혀를 끌끌차며 “요즘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라. 시장에서 물건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값이 오르고, 물건이 많이 나오면 값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데 그것도 모르나..” 하였다.

투자는 미래에 수익을 낳는 자산을 구입하는 것이다. 모든 투자에는 위험부담의 요소가 따른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자산가격이 단기간에 요동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가격의 급상승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것을 투기라고 한다.

단기간에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사람들은 투기를 하는 것이다. 투기는 경제 여건이 변화될 때 실물경제가 여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가격이 조절되는 중요한 시장기능이다.

투기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가격이 급등했다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급변동을 막기 위해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투기판에 개입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투기 자체를 범죄로 보는 것은 투자를 범죄로 보는 것과 같다.

현 정부는 동키호테가 낡은 무기를 들고 풍차에 달려들듯 투기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천방지축 부동산정책을 만들어 시장을 교란하여 결과적으로 부동산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최근의 LH사태를 언론매체들은 LH직원투기사태라고 부르고 있다. 이 사태의 본질은 투기가 아니다. 공공기관의 임직원들이 내부정보를 활용한 부당한 이익을 추구한 것이다.

이는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와 시장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주식시장에서도 내부정보를 활용한 이익추구를 중죄로 다스리고 있지 않은가.

공직자들까지 이 투기 아닌 투기에 가담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어 권력형 부정부패 스캔들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이번 사태는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가. 그동안 현정부의 지지자들은 현정부의 정책무능과 내로남불 행태를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 더 이상 실상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정책은 엉터리로 하면서 남탓만 하는 현정부의 허상 정치가 한계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정책, 아니 부동산정치가 대표적이다.

시장원리에 따른 정상적인 투자를 투기라고 하고, 비정상적인 투기를 공익개발이라 부르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부동산정치의 필연적 귀결이 이번 LH사태다.

현정부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다룰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다. 그동안 해온대로라면, 사태의 책임은 애꿎은 공무원들이나 개발사업자들에게 둘러 씌우고, 이번 사태를 가져온 잘못된 정책에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가능만하면 어떻게든 정치적 상대진영에 책임을 전가 할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정책들은 고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시장을 더 왜곡시키고, 세금은 더 올릴 것이다.

현정부내에는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는 사람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책임의식 이 있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천방지축 정책을 펴면서 일시적으로 표를 모으는 재주 밖에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숨만 나온다.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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