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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에 옷이 젖는다 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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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에 옷이 젖는다 한들
  • 전민일보
  • 승인 2021.03.09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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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재촉하는 기분 좋은 비를 맞았다. 머리와 옷을 적시는 것조차 상큼하다. 벌써 생명의 기운이 온 땅에 충만하다. 너무도 광활하지만 그래서 더욱 황량한 우주에서 지구를 생명의 별로 만들어 준 것도 비가 아니던가.

때로 비는 파멸적인 모습으로도 우리에게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섭리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화산과 태풍이 사라진 지구는 화성(火星)과 같은 죽은 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세찬 무더기비에 옷이 젖는 정도야 무슨 대수겠는가.

베트남의 옛 수도 후에(Hue)에 갔던 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둘러 본 왕궁 유적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지 여성 가이드였다. 독학으로 한국말을 배웠다는 그는 베트남 동해를 언급하며 중국의 패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해가 그렇듯 남중국해도 제국주의 산물이다. 일본해라는 말에 분노하는 한국인이 아무렇지 않게 남중국해로 지칭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여러 면에서 닮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현대사에서 악연도 있다.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베트남이 전승국(戰勝國)이라는 것이다.

간과하기 쉽지만 베트남은 미국과 프랑스만 물리친 게 아니다. 그들은 징기스칸의 몽골군은 물론 등소평(鄧小平)의 중국군도 패배시켰다. 등소평은 베트남 침공 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다. 그는 카터에게 ‘어린 친구가 버릇이 없어 볼기를 조금 쳐주겠다.’고 호언했지만 전쟁의 결과는 중국군의 참패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시 중국군과 교전한 베트남군 대부분은 민병대 수준이었다.

베트남 최정예군이 투입되기 전에 중국군이 정신승리(?)를 선언한 후 퇴각한 것이다.

일개 외교부장은 물론 아그레망을 해주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3류 관료출신 대사가 한국에게 범한 무례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베트남의 사례다.

베이징 군부 실력자들 면전에서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베트남군 장성이었다. 전승국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베트남이 말하는 평화와 대한민국이 말하는 평화에는 차이가 있다.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평화를 쟁취했다. 평화는 구걸을 통해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호지명(胡志明)은 이렇게 말했다.

“미군 1명이 죽을 때 베트남인 100명이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땅에 마지막 남는 것은 베트남인이 될 것이다.”

1910년 8월 29일, 한반도는 너무도 평온했다. 한 나라가 이토록 평화롭게(?) 멸망한 사례가 있었던가. 이 땅엔 평화주의자(?)가 넘쳐난다. 누가 평화를 부정하겠는 가.

분명 전쟁을 일으킬 능력을 가진 나라가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인류이성의 진보다.

한국사의 그 수많은 전란을 초래한 것은 과연 누구인가. 지구상 그 어느 민족보다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가 아니던 가. 한국인이 평화를 얘기하지 않아서 한국사가 왜곡 되었다면 그 모든 책임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꼭 같은 크기로 전쟁이 두려워 참된 평화를 포기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거란(契丹)은 한족(漢族)의 송(宋)을 굴복시킨 강자였다. 고려는 그런 거란과 세 차례 전면전을 치른다. 그 과정에서 고려가 입은 피해는 막심했다. 그럼에도 고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평화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전후 100여 년 간 이어진 동북아의 평화는 그런 고려의 힘으로 만든 국제질서였다.

아쉬운 것은, 한국사에서 이것이 진정한 자존과 평화의 마지막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원(元)과 명(明) 그리고 청(淸)을 이어 등장한 현재 중국은 대단히 예외적 국가형태다.

현 중국 경계는 한족(漢族)이 아닌 만주족(滿洲族)이 이뤄놓은 영역이다. 그들이 이런 예외적 상황을 합리화하고 영구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 동북공정을 비롯한 역사왜곡 작업이다. 그리고 그 종국에 이른바 중화제국주의로 무장한 중국몽(中國夢)이 있다.

5천년 동안 한반도에는 수많은 비가 내렸다. 그중엔 생명의 봄비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린 태풍도 수없이 존재했다.

내리는 비에 옷이 젖는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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