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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33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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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동 33경
  • 전민일보
  • 승인 2021.03.0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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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가 아름다운 것은 넉넉하고 덕스러운 덕유산 때문이요. 덕유산이 아름다운 것은 심산유곡의 대명사인 구천동과 천혜의 33경 때문이다.

나는 덕유산의 백미로 일컫는 구천동 33경을 카메라의 눈과 마음의 눈으로 그리며 주유하는 버릇이 있다.

나제통문에서 장장 70리를 흘러가는 금강의 상류 구천동 계곡을 따라 33경이 연이어지며 덕유산 향적봉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제1경으로 알려진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나제통문 앞에 서면 우리 동족인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멸망시킨 동족상잔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거북바위가 숨어 있는 모습의 은구암을 거쳐, 청금대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백옥빛 물길을 따라 오르면 용이 승천하려고 십 년을 공들였다는 와룡담이 눈길을 끈다. 일사대를 휘감아 오르는 물이 마치 누운 용같이 생긴 바위 주변을 맴도는 담이 인상적이다. 옛적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의 노송은 어디로 갔는지 행적조차 묘연하다.

조선 말기의 문신 일사 송병선이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서벽정을 짓고 후진을 양성했던 일사대에는 수성대가 천년송을 머리에 인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봄이면 자주색으로 단장한 철쭉이 개울을 곱게 물들이는 함벽소는 동양화를 연출한다. 가의암에서 바둑을 두던 신선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추월담은 임진왜란 때 명장 김천일 장군의 장인이었던 양 도사가 가을밤 연못에 비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달을 보고 도를 깨쳤다.

낚시터로 유명한 개여울 만조탄은 구천 승려들의 먹을 쌀을 씻은 물이 하얗게 흘려서 뜨물재 또는 뜸재로도 불리는 10경의 명소다.

파회는 구천계곡을 휘어 감는 맑은 물이 급류를 타고 돌아 쏟아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폭포수에서 무지개가 피어오른다. 백옥처럼 깨끗한 마음 같다는 수심대와 세심대에서 세속에 찌든 심신을 씻고, 물거울로 불리는 수경대에서 설익은 내 삶을 비춰본다. 월하탄은 기암을 타고 쏟아지는 은빛 물결이 달빛에 비치면 장관을 이룬다.

사자담은 신라 인월 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인월담과 칠봉의 사자가 내려와 목욕했다. 저절로 시 한 수가 읊조려진다. 반석이 깔려있는 청류동과 선녀들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하고 비파를 뜯었다는 비파담, 선인들이 차를 달여 먹고 담배를 피웠다는 다연대가 어우러진 풍광은 마치 선계에 와 있는 듯하다.

백련사 계곡과 월음령 계곡의 물이 만나는 구월담과 여울 소리가 거문고의 음률처럼 들리는 금포탄은 심산유곡의 청류와 바람 소리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칠봉의 호랑이가 산신령의 심부름 가다가 안개 때문에 빠져 울부짖었다는 호탄암에서 안심대까지 이어지는 맑은 계곡은 청류계로 불린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던 어느 신하가 세조에게 쫓기다 여기에 와서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대는 백련사를 오가는 산꾼의 휴식공간이다.

신양담은 무성한 숲 터널이 이어지다 비로소 하늘이 열리며 햇빛을 볼수 있는 곳이다. 구천폭포는 거울처럼 물이 맑은 명경담과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 백련사 스님들이 몸과 마음을 씻었다는 백련담을 지나면 여러 개의 직소폭포가 연꽃처럼 수놓은 연화담이다.

사바세계를 떠나는 중생들이 속세와의 연을 끊는 곳 이속대는 백련 선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백련사에서 지척이다. 백련사에서 다리쉼을 하고, 사찰 뒤로 오르면 어느덧 33경의 절정인 덕유산 향적봉에 닿는다.

향적봉에서 산들바람에 땀을 식히며, 첩첩이 다가오는 지리산, 가야산, 민주지산, 백운산, 운장산, 대둔산을 굽어보는 조망은 압권이다. 장엄한 일출과 산허리를 휘감은 구름바다,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과 얼음 꽃, 덕유 평전의 푸른 초원길과 늦여름의 원추리의 향연은 환상적이다. 구천동 33경에 내 마음을 빼앗긴 이유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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