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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시골에서 떠오른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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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시골에서 떠오른 단상들
  • 전민일보
  • 승인 2021.02.18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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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때다. 그런데 올 설에는 가족만남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캠페인이 있었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위한 고육지책이다.

그래서 모두들 핵가족만으로 혹은 홀로 명절을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구름에도 은빛나는 부분이 있듯이, 이번 설 연휴는 바쁜 생활의 흐름을 멈추고, 그동안 놓쳤던 삶의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 지긋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필자는 주말에는 가급적 시골에 내려가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시골생활이 생각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시골에 있으면 하루종일 몸을 움직이게 된다.

‘설이’라는 이름을 가진 진돗개 강아지를 산책시켜 줘야 하고, 몇 마리 키우는 오골계 닭들도 돌봐야 하고, 배고플 때가 되면 자기 집에 온 것처럼 나타나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노랑이, 흑백얼룩이 산고양이들도 모르는 체할 수가 없다.

지난번 몇주 동안 같이 영하의 기온이 계속되면 정말 힘들다. 특히 신경쓰이는 것은 물공급이다. 물이 얼으니 동물들에게 날마다 물을 새로 공급해줘야 한다. 바깥 수돗물이 얼으니 실내 수돗물을 가지고 나가서 줘야 한다.

집에서 돌봄을 받는 가축들은 그래도 형편이 괜찮다. 야생 동물에게는 추운 겨울이 무척 힘들다. 먹이를 구하기 어렵고, 영하의 기온이 되면 특히 물 구하기가 어렵다. 가까운 저수지에 날마다 찾아오던 텃새 오리떼들이 안 보이면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걱정된다.

저수지에 날마다 오는 두루미 한쌍이 있는데, 저수지가 얼어붙으면 민가에 가까운 개울로 내려와서 얼음구멍을 찾는다. 야생동물들은 며칠간 먹지 못하 고 물을 마시지 못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 남는다.

며칠전부터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니 저수지에 붉은 주둥이와 하얀 몸, 그리고 검은 꽁지를 지닌 오리들이 다시 찾아온다. 신기한 것은 저수지에 사는 어류들이다. 가을에 저수지 물을 빼내어 바닥까지 비었다가 비가 와서 물이 차면 어류들이 다시 나타난다. 그 동안 진흙뻘 속에서 숨쉬며 버티는 것이리라.

야생 동물들도 식물들도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만물이 다시 살아난다. 때로 혹독한 겨울이 오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충격에 의해 균형이 파괴되기도 하지만 자연에는 복원력이 있어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도 크게 보면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환경을 되살리려는 자연의 작용일지 모른다.

입춘이 지났으니 벌써 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새해가 새해 같지 않고, 설명절도 명절 같지 않은 것처럼, 봄이 와도 봄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봄이 아니다. 감염병 사태의 종식이다. 일상의 회복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 긴 설연휴 동안 자신 속에 가라앉아 있다 보니 감상적인 기분으로 세상걱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세상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든 돌아간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카이스트는 개교50주년 기념일을 대체하는 휴일이 있어 이번 설연휴가 하루 더 길었다. 지난 2년간 부총장으로 봉직했는데 다음달부터는 자유인이 된다.

주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자유로운 교수생활을 해온 필자에게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해야 하고 하루에도 많은 결재를 해야 하는 일이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일하는 조직을 통솔하는 위치에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일은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이제 푹 쉬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무슨 일인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큰 사람이라면 푹 쉴 것이고, 작은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세상일에 또 이끌려 들어가게 되겠지요.”

채수찬 경제학자,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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