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4 22:58 (수)
지도자의 조건, 사유의 존재 구속성을 넘어서
상태바
지도자의 조건, 사유의 존재 구속성을 넘어서
  • 전민일보
  • 승인 2020.11.30 13: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는 삶의 방식 자체를 근원적으로 변화시켰다. 역병과 흑사병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 패배와 중세 유럽 붕괴를 가져온 모습 그대로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폐가 되고 홀로 지내는 삶이 지향하는 바가 된 현재는 훗날 어떤 방식으로 규정될까.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삶과 철학’이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연 요청을 받고 가장 고민했던 것도 강연 자체보다는 사람이 모인다는 사실에 대한 논리의 합리화였다.

다행히도 파주시와 (사)문화살림에서 방역관련 조치를 철저히 시행한 가운데 강연을 잘 마쳤다.

우계 성혼을 얘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율곡(栗谷) 이이(李珥)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살아서는 평생 뜻을 같이했고 죽어서는 문묘(文廟)에 같이 배향되었다.

두 사람의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비교할 수 있다. 우율지교(牛栗之交)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이례적 사례다. 두 사람의 무덤조차 불과 8km를 사이에 두고 있다.

역장(逆葬)으로 조성된 묘역조차 닮았다. 그런데 현실에서 두 사람의 위상은 천양지차다.

대학자이자 교육가이며 시인이면서 정치인이기도 했던 우계는 대단히 저평가된 선현이다.

우계는 단순한 성리학자일 뿐일까. 누군가 그렇게 답한다면 그것은 우계에 대해 전혀 공부하지 못한 탓이다.

여전히 해결 난망한 분단모순과 그에 기인한 각종 첨예한 사회적 갈등 속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에게 우계 선생은 자신이 실천한 삶을 통해 미래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계는 정치의 근본을 얘기할 때 제일 먼저 시민여상(視民如傷)을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기를 상처 돌보듯이 하라.” 그와 더불어 지도자의 책임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군덕성취(君德成就). 군왕(君王)은 한 세상의 표목이며 근원이라는 이 사상은 단순히 군왕의 덕을 숭상하는 의미가 아니다. 군주가 가지고 있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이기 때문이다.

대외적 압력과 대내적 갈등이 상시화 되어 있는 한국 지도자에게 군덕성취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우계는 관료가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대해 진주목사 이제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선비들은 명망이 낮을 때는 겸손하고 온화한 선비 같다가 명망이 높아지면 태연히 지위에 올라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본래 소유했던 것처럼 여긴다.”

이것이 그냥 옛 이야기인가.

우계는 비록 서인(西人)으로 분류되지만 상대 당파에 대한 관용정신을 잃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우계 선생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다. 우계는 절친 율곡과도 의견을 달리 했지만 그를 자신의 스승이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칼 만하임(Karl Mannheim)이 제기한 ‘사유의 존재 구속성’에서 자유로웠던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43세이던 1577년 우계는 최영경(崔永慶)과 정인홍(鄭仁弘)에게 그들의 스승인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과 관련해 사과 편지를 쓴다.

“말세의 풍속이 올바른 사람을 함부로 비판하여 제 멋대로 비난하고 꾸짖는 자가 많은데 나 또한 남명 선생을 함부로 논하여 바르지 못한 풍조를 도왔으니 진실로 큰 죄입니다.”

내로남불, 진영논리, 적대적 공생, 거울효과, 갈등의 내재화가 일상화 되어있는 현 한국사회에서 우계가 보여준 이 모습만큼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또 무엇인가?

율곡은 자신과 우계를 이렇게 비교했다. “만약 견해(見解)의 우월을 논하자면 내가 약간 나을 것이나 행실이 돈독하고 확고한 것은 내가 따르지 못한다.”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 앎을 실천하는 것이다.

율곡이 우계를 평한 방점도 바로 거기에 있다.

오늘 대한민국에는 앎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가.

보수와 진보, 계층, 지역, 성별 갈등은 물론 분단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오늘 우리에게 우계는 말이 아닌 자신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조차 ‘사유의 존재 구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우계의 존재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신천지예수교 전주교회-전북혈액원, 생명나눔업무 협약식
  • '2024 WYTF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서 실버태권도팀 활약
  • 이수민,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 여자부 풀코스 3연패 도전
  • 기미잡티레이저 대신 집에서 장희빈미안법으로 얼굴 잡티제거?
  • 대한행정사회, 유사직역 통폐합주장에 반박 성명 발표
  • 군산 나포중 총동창회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성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