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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율곡(栗谷)의 당파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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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율곡(栗谷)의 당파는 어디인가
  • 전민일보
  • 승인 2020.08.27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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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국사 시험 문제로 나왔던 내용 중에 율곡 이이의 당파에 관한 지문이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율곡은 동서인의 보합을 위해 양시, 양비론까지 거론하며 노력했지만 결국 서인이 된다. 붕당과 관련한 율곡의 근본적 인식은 그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에서 출발한다. 관련해 유념할 기록이 있다.

당대 원로인 이준경은 죽기 전 선조(宣祖)에게 올린 유차(遺箚)에서 붕당의 조짐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다.

“사사로운 붕당을 깨뜨려야 합니다. 신이 보건대, 오늘날 사람들은 간혹 잘못된 행실이나 법에 어긋난 일이 없는 사람이 있더라도 말 한 마디가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배척하여 용납하지 않으며.. (중략) 전하께서 공정하게 듣고 두루 살펴 힘써 이 폐단을 없앨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내는 반드시 국가의 구제하기 어려운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사 최고 경세가인 율곡이 왕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이준경의 고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준경의 말은 울분에 격앙되어서 나온 것이거나 아니면 정신이 착란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써, 불충이 될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큰 화를 부추기는 근원이 된다 하겠습니다.” 후세 역사는 이이가 아닌 이준경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서문에 이렇게 일갈(一喝)한다.

“역사의 진실을 들여다보려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역사의 반복 또는 적어도 반복에 가까운 것을 대비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서 충분한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준경의 얘기는 당대 조선만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뭐가 정의(正義)인지에 대한 정의(定義)는 물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구분하는 진보와 보수의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변화와 시간에 대한 상대적 구분 대신 극단적 적대감과 조롱이 난무하는 행태는 놀랍게도 동서분당의 논리에 수렴한다.

그것은 분명 외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내적으로는 여전히 이기론(理氣論)의 잔상에서 머물러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일본인의 조센진(朝鮮人) 호칭에 그토록 분노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동족을 향해 토착왜구로 부를 수 있는 그 담대한 용기와 무한한 권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만일 빨갱이라는 말이 가진 그 완벽하고 강고하며 절대 반박불가한 주홍글씨를 대체한 것이 토착왜구라면 나는 이 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임이 분명하다.

모두가 애국자인 이 시대에 애국자로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연 용기란 무엇인가.

나를 참으로 난감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내가 그토록 존경하고 아끼는 분들의 견해가 나와 다를 때 내가 처할 수 있는 행태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용기가 없다. 그것은 내가 옳다는 자의식 때문이 아니라 내가 공존할 수 없는 테두리의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공포 때문이다.

SNS를 통해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설파했던 교수가 고위 공직자가 되어 자신을 향한 질문에 답을 하게 되었을 때 인민이 원했던 답은 더도 덜도 아닌 그가 제시했던 바로 그 기준이었다.

타인을 향해 그토록 매서운 논리로 정의를 얘기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자신이 내세운 기준에 부합하기를 기대하는 인민의 바람은 상식이다. 나는 두렵다. 내가 과연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파괴된 내 이성을 찾아야한다는 것이.

내 페이스북 친구의 범위는 내가 판단하는 스펙트럼의 구분기준으로는 극우에서 극좌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다양한 견해를 듣는 것은 내 짧은 소견에 귀한 청량제가 된다.

그럼에도 섬뜩한 것은 그들의 소리에 담긴 증오와 살기에 가득한 말의 향연이다. 논리의 비약이지만 거기엔 6·25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있다. 어쩌면 우리는 잠재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 잔혹함의 끝은 상상하기도 두렵다.

자존심 강한 군주인 선조는 이렇게 얘기했다. “나를 이이와 성혼의 당이라고 해도 좋다.” 율곡이 부활한다면 어느 당에 속할까. 우리는 아직 이이와 성혼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 모른다.

장상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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