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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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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풍속도
  • 전민일보
  • 승인 2020.08.20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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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온통 어머니만 있고, 아버지는 없는 세상인 듯합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다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없다며 우리엄마, 우리엄마 합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 당신은 무얼 하셨습니까? 아버지, 묵묵히 집안에 울타리가 되시고 든든한 담이 되셨지요?’

어느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문자 메시지의 서두다. 이 메시지를 읽고 나도 2남1녀의 아버지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자녀들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인가 보구나 싶었다. 나도 그동안 그러려니 여겼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열 달이나 자란 뒤 세상에 태어났으니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더 갚은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머니와 자녀들은 원래 한 몸이었다가 분리된 것이니, 사랑이 더 절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 서울에 사는 큰아들은 매주 한두 번씩 나와 꼭 통화를 한다.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몸조심하라고 전화를 하고, 독감이나 코로나19같은 질병이 번지면 예방수칙을 잘 지키라며 당부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역시 큰아들은 다르구나 생각한다.

미국에 사는 작은아들은 보이스톡도 하지만 스마트폰 3남매 밴드에 자주 글을 올린다. 안부도 묻고, 미국소식도 올리며, 코로나19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전해준다. 그 3남매 밴드는 3남매와 우리 부부만 볼 수 있다.

서울에 사는 고명딸은 제 엄마와는 자주 전화를 주고받는데, 나는 아내를 통해서 딸의 소식을 듣는다. 나는 딸의 목소리를 들어본 게 언제인지 모른다. 아빠보다 엄마와 더 친하게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윗사람 눈치 보며 아랫사람에게 치받히면서, 오로지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일에 일신을 다 바쳤지요. 내 논에 물들어가는 것과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흐뭇하고, 여우같은 마누라 치장시키는 재미에 내 한 몸 부서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지요. 옛날엔 그래도 월급날이 되면 월급봉투라도 받아들고 마누라 앞에 턱 내어놓으며 폼이라도 잡으며 위세를 떨었건만, 이젠 그나마도 통장으로 깡그리 입금되어 죽자고 일만 했지 돈은 구경도 못해보고 마누라에게 주급으로 받는 용돈이 부족하여 용돈 올려 달라며 갖은 애교를 다 떱니다. 세탁기에 밸밸 꼬인 빨래를 꺼내 너는 일도, 청소기 돌리는 일도, 애들 씻기는 일도,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날 맞춰 버려야 하는 일도 다 아버지, 당신의 몫입니다.’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집안 일로 좁아지고 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정년퇴직을 하고 집안에 머물다 보면 아버지에겐 별명이 몇 개 더 붙는다.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가 그것이다.

집에서 날마다 한 끼를 먹느냐 두세 끼를 먹느냐에 따라 호칭이 달라진다. 그러면 딸들은 엄마 힘들게 하지 말고 여행도 다니라지만 여행도 빈손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젊어서부터 자주 다녔어야지 늘그막에 혼자 여행을 다닌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매달 연금을 받는 아버지는 그래도 목에 힘을 주며 노후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것조차 시원치 않는 아버지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키 어렵다. 차라리 아내의 사랑을 받는 애완견이 부러울 뿐이다.

아버지, 그 자리는 사표를 내고 물러설 수도 없다. 한 번 그 호칭을 얻게 되면 영원히 놓아버릴 수 없다. 그만큼 무거운 자리다.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제쳐놓고 어머니만 챙긴다. 맞벌이 하는 아들이나 딸들은 손자를 보살펴 달라면서 어머니만 모셔간다.

시골에서 노부부만 살던 부모를 별거하게 하여 불쌍한 아버지를 더 외롭고 서글프게 만든다. 그래도 잔정이 조금 남아있는 아내는 주말에 남편곁으로 왔다가 월요일쯤 다시 손자 곁으로 돌아간다. 그게 요즘 우리네 새로운 노인 풍속도다.

중고등학교 때 가르치는 가정과목은 이제 여학생들이나 똑같이 남학생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할아버지가 된 남학생들이 노후에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살림살이를 할 줄 아는 할아버지가 되어야 노후가 행복할 게 아닌가?

김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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