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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탓 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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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탓 네덕
  • 전민일보
  • 승인 2020.07.2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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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애들을 잘 살펴주세요. 전 불이 나서 죽지 싶어요”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현장에서 수미 엄마가 할머니에게 걸어온 전화내용이었다. 이것이 수미엄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2003년 2월 18일 방화범 김대한이 저지른 대구지하철 참사는 192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상처를 입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사건이었다.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간 그 참사 현장은 생지옥이 이보다 더하랴 싶었다.

비명에 간 희생자들의 넋과 부상자들을 생각하며,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온 국민이 오열했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유독가스와 화마에 희생된 넋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살아남은 유가족들이 더 고통스러웠을 게다.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8살짜리 수미와 두 동생의 처지가 그랬다.

“엄마 만나면 말도 잘 듣고 심부름시키는 것 다할 거예요”

수많은 희생자 유가족 중에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소녀 가장이 되어버린 수미와 두 동생의 말이 지금도 17년 전 수미가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1년 전 아버지를 심장마비로 잃었고, 대구 참사에서 어머니마저 잃어버린 어린 삼 남매였다.

마치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여겼다.

8살, 6살, 4살의 삼 남매는 어머니의 죽음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일 수밖에 없었다.

수미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급식보조원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어린 삼 남매를 키웠다.

생계를 위해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요리학원에 가려고 지하철을 탔다가 목숨을 잃었다.

우리 부부는 TV를 시청하면서 “마음 착한 수미어머니의 고생을 덜어 주려고 남편이 천당으로 데려갔다”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을 자기 잘못으로 알고 있었다.

사회에 만연된 ‘네탓 내덕'을 ‘내 탓, 네덕'으로 여기는 지고지순한 마음씨였다.

이는 이기주의와 안전불감증의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어른들에게 주는 경종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구를 원망할 줄도 몰랐다.

왜? 어른들이 불러온 대구지하철 참사에 어머니가 희생됐는지도 몰랐다.

다만 할머니를 모시고 두 동생을 키워야 하는 어른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천근만근 같은 삶의 무게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1996년부터 나와 자매결연을 한 12살짜리 소녀가장이 아름이었다.

아름이의 모습이 수미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름이도 어머니를 병환으로 잃고,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뒤 두 동생과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녀가장이 됐다.

언제 봐도 티 없이 밝은 모습으로 개구쟁이 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꿋꿋이 자라주는 아름이를 볼 때마다 오히려 어른인 내가 삶의 용기를 얻으며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요즘 부쩍 소년소녀가장이 증가하고 있어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이유는 부모의 이혼과 교통사고, 그리고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대형 참사도 한 몫 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도시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아이들도 많지만, 시골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부모의 이혼으로 고아가 되어 할아버지나 친척에게 맡겨진다.

이혼율과 대형 교통사고의 증가, 사회시설의 부실화 등이 가져온 국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사고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을까. 이는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고, 나라는 개인주의가 만연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다행히 수미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자매 결연자와 후원자가 나타났다.

모 단체가 수미 3남매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을 전액을 돕겠다고 약속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17년 전 나이 어린수미에게서 ‘내 탓, 네덕’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고, 아름이로부터 삶의 용기를 얻었다.

불현듯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성년으로 곱게 자랐을 아름이와 수미, 삼 남매 모습이 그리워진다.

김정길 영호남수필문학협회 전북지부 회장·전북산악연맹 부회장

※본 칼럼은 <전민일보>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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