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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벌은 ‘훈육’, 자녀도 그 생각에 동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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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체벌은 ‘훈육’, 자녀도 그 생각에 동의할까
  • 전민일보
  • 승인 2020.06.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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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9살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7시간이나 가둔 계모, 같은 이유로 아이의 손에 화상을 입히고, 온몸에 멍이 들게 학대한 충남의 계부. 동화책에서 나오는 나쁜 계부계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만행이다.

9세는 갓 초등학교 2학년이다. 그 어린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아동학대의 상처는 살아가면서 큰 후유증이 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계부와 계모에 의해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입양가정 등 친부모 슬하에서 생활하지 않는 가정에 대한 선입견마저 생길까 우려된다.

친부모가 아니라서 학대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부모로써 준비되지 않은 자들이고, 인간적 성숙함이 부족했기에 발생한 학대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변화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부모는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자녀들에게 자의적인 ‘사랑의 매’를 때리고 있다.

스스로 이것은 학대가 아니라, 훈육이다고 포장할 뿐,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아동학대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훈육이 목적일지라도 부모의 감정이 그 과정에 인입된다면 학대이다.

'꽃으로도 아이는 때리자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니까 장난도 심할 수 있고, 때로는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어른의 시각에서는 ‘버릇 없다’로 규정되기 마련이다.

일상의 가정생활에서 쉽게 경험하지만 아동심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통상 부모에게 훈육 또는 체벌을 받더라도 아이는 다음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면서 부모에게 평소처럼 다가간다.

아이니까 금방 잊어버렸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틀렸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너무 빨리 용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작은 체벌이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반복되는 체벌은 아이의 정서상 문제로도 이어지고, 청소년기에 일탈의 빌미로도 이어 질수도 있다.

여행가방에 감금된 채 숨진 아동과 창녕 편의점 아동 등 잇단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전 국민들은 분노한다.

그들에 대한 비난을 퍼붓기에 앞서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부모들이라면 한번쯤은 자신의 훈육과정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체벌’이라 위안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의적인 기준이다.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 인식 등에 따라서 당신의 사랑의 훈육행위가 그들에게 학대로 비춰질 수도 있고, 어쩌면 본인 스스로가 아동학대의 당사자일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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