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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참나무의 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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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참나무의 월동
  • 전민일보
  • 승인 2020.02.05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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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참나무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1990년대 우리나라에 들여온 외래수종이다. 좁은 원추형 모양으로 곧게 잘자라며, 수고는 25 ~30m에 이르는 속성수다. 조경용으로 도입하였는데, 크다 하여 대왕참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가느다란 가지가 줄기와 큰 가지에 핀처럼 튀어나와 핀pin 참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잎은 타원형으로 광택이나며 5~7쪽으로 갈라진다. 얼핏보면 단풍나무 잎을 닮았는데, 갈라진 끝 부분은 가시 같은 침이 있다.

대왕참나무는 잎사귀가 곱게 물들어 보기에 좋을뿐더러 공해를 정화해주는 능력도 탁월하다. 30년 이상 아름드리 나무가되어야 건축재나 가구재로 쓰인다. 공원수와 가로수로도 인기가 있어 산림청에서는 미래의 경제 수종으로 선정한 바 있다.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 우승하고 월계관에 꽂았던 나무다. 손 선수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종자를 모교인 양정고등학교 교정에 심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대왕참나무가 되었다.

대왕참나무는 낙엽을 조금 떨군 뒤 오그라진 갈색 낙엽을 끌어안고 겨울을 넘긴다. 겨울 점퍼를 입은 것 같다. 잎사귀는 손가락을 오므린 모양을 하고서 겨울바람을 막아준다. 매서운 바람이 불면 마른 잎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산들거린다.

대왕참나무는 말라버린 잎사귀를 겨우내 달고 있다가 봄이 오면 그때야 새잎으로 갈아입고 헌잎을 내버린다. 원산지에서부터 몸에 밴 지혜인지, 우리나라에 건너와 겨울 추위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에 대왕참나무 곁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겨울나무가 애처롭다.

활엽수 중 마른 잎을 겨울 동안 남겨두는 대왕참나무의 모습은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부스스한 모습, 구부러진 잎사귀를 보며 노인의 삶을 생각한다. 새잎을 내기 위해 한겨울을 떨어야 할 대왕참나무의 잎사귀, 노인의 삶이 이를 닮았지 싶다. 자식들이 노인을 보호해야 할 것이거늘, 늙어서도 자식과 손주 걱정에 애를 태우는 노인의 처지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겨울에 옷을 두껍게 입고, 동물은 부드러운 털을 촘촘하게 갈아 매서운 추위를 견딘다.

활엽수는 반대로 여름엔 크고 두꺼운 잎을 달고 있다가 정작 찬바람이 불 천둥벌거숭이처럼 활활 잎사귀를 벗어버린다.

겨울은 단련기다. 자람이 멈추어 나이테도 가늘다. 이를 본받으면 겨울은 버리는 시기요, 단련하는 때다. 껍질을 두터이 하고 뿌리를 깊게 뻗어 모진 비바람에 버틸 힘을 기르는 게 아닐까?

동백과 목련의 꽃봉오리는 겨울바람 속에서 통통하니 살을 찌우고 벚나무 이파리는 조금씩 길어져 간다. 은행나무 새순은 추위 속에서 자란다.

겨울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려 씨앗의 이불이 되게 하고 눈비를 가려주는 천막이 되게 한다. 결국에는 거름이 되어 토양을 살찌게 한다. 노년에게 주는 교훈이다.

대왕참나무는 그럼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아마 속성수라 추위를 더 타는 것 같고, 월동을 위한 자구책이 아닐까 생각된다.나무가 없는 민둥산은 겨울 동안 얼마나 추울까?

지금은 수목이 울창하고 낙엽이 수북이 쌓여 따뜻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함박눈이 쌓여도 복스럽게 보인다.

민둥산에 칼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날릴 때의 그 황량함이라니 산이 살찌고 국토가 풍요로워야 백성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왕참나무가 번성하여 경제 수목으로 주목을 받았으면 좋겠다.

키가 곧고 훌쩍 자라서 우리의 산야를 아름답게 만든 뒤, 베어져서는 유용한 건축재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어찌 생각하면 내가 사는 게 대왕참나무를 닮았다.

아들, 딸은 혼인하고 모두 전주에 살고 있다. 딸네 집은 2백 미터 떨어져 있고, 아들은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산다. 세 명의 손자, 손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난다.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고 심리적인 독립을 지키기만 바라고 있다.

나무들은 각기 자신이 사는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면서 겨울을 넘긴다. 어떤 방법이 나을지 우리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우리 땅에 건너와 누런 잎을 가득 달고 월동을 하는 대왕참나무가 오래 눈길을 잡아끈다.

김현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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