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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속의 사관(史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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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歷史)속의 사관(史官)
  • 전민일보
  • 승인 2008.08.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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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란 말이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거긴 반드시 한 사람의 스승이 있다는 논어의 가르침이다. 선행은 본받고 악행은 따라 하지 않으니 그게 바로 선행이 아니냐는 뜻일게다. 남이 남긴 뒤를 보고 취할 것과 버릴 것을 가려 행하라고 하는 이 평범한 교훈에서 새삼 역사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의 그 숨겨진 뜻을 가늠해본다.
  역사란 있는 것을 사실대로 기록하고 보존해서 후세의 귀감이 되고자 하는 데에 그 생명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史實)을 사실대로 쓰거나 보존하는 일이 그리 쉬운 노릇인가?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아예 사관(史官)의 기록은 임금도 고치지 못하도록 당대의 것을 볼 수 없도록 못 밖아 엄격히 지켜왔다. 자신의 업적은 미화하되 자신의 치부는 내보이기를 꺼리는 사람의 본성을 잘 알고 취한 현명한 장치였다. 추한 과거를 은폐코자 사관의 기록을 고치거나 없애도록 강요했던 조선시대 영조나 연산의 행위조차도 조금의 가감없이 기록되어 오늘에 전하는 것은 바로 그런 조상들의 신념과 의지의 덕분이 아닌가 한다. 치부를 속살까지 드러냄은 다시는 되풀이 안 한다는 결의이며 목숨을 다해 그걸 사실대로 보존함은 후대에게 귀한 교훈이고자 하는데에 그 진의가 있었을 것이다.
 수년 전에 해외 여행 중 잠깐 들렸던 이태리의 사도(死都) 폼페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벼운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사치와 향락, 그리고 퇴폐의 극치로 상징되던 도시 폼페이, 신의 형벌로 하루 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결코 그 자랑스러울 것이 없는 조상들의 치부를 조금도 가리우거나 덮어버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그 치부의 현장을 하나하나 파헤쳐 자신들의 교훈으로 기리고 있다. 비록 무너지다 남은 담장이지만 길 모퉁이의 모습까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 담장 안의 깊숙한 방에 그려진 춘화도의 실상과 음행의 현장까지도 생생하게 보존하고있다. 말쑥해진 서울 거리에 다방골의 일각 대문 하나라도 남아 있거나 6.25 때 잔인하게 일그러진 건물의 잔해 하나 만이라도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흔들리는 가치관 병든 이데올로기로 방향 감각마져 잃고 좌왕·우왕하는 젊은이들이 봐야하는 안타까움은 좀 덜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독일의 옛성 하이델베르크는 그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전쟁이라는 가공할 죄 때문에 얼마나 흉한 상처를 받았는가를 지금껏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창공을 캔버스삼아 그린 그로데스크란 벽체의 미완성 작품 같이 깨어진 창문들이 지금도 하늘을 향해 고통스런 신음을 내뿜고 있다.
  또한 뉴욕의 상징인 자유여인상 발밑에 자리한 미인 박물관의 노예 무역선 모형도 가슴을 찡하게한다. 굴비두릅 처럼 엮어진 채 몸통에 짓눌리는 흑인 노예의 처참한 모습들이 보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한다. 비록 흑인과의 인종적 갈등을 오늘도 안고 사는 그들이지만 선은 선, 악은 악이라는 인간적인 솔직성과 참회의 마음은 살아 숨쉬고 있다. 노예선의 수치를 그들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양심대로 역사대로 역사 앞에 조각해 놓고 매일처럼 바라다본다. 잠시 지나친 필자의 감상으로 얼마나 깊이 볼 수 있을까 만은 지난 여행길에 들른 마닐라의 말라까냥궁의 모습 또한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필리핀의 대통령관저인 이 궁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실각 후 이멜다의 수백 켤레의 구두와 더불어 사치의 극치를 이루었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영조나 연산군의 치부를 실오라기 하나 가리거나 덮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우리 사관의 뜻이 연상되어 새삼 충격적이었다. 당시 새 대통령이 된 코라손 아끼노는 집무실과 관저를 궁 건너편에다가 조촐하게 마련해 놓고 궁무회의나 국빈접대 등 공식행사만을 제외한 시간에 그 역사의 현장을 만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옛 왕조로 부터 스페인의 4백여년 통치를 거쳐오면서 영욕을 함께한 궁은 필리핀 고유의 나무조각들로 장식 축조되어 하나의 커다란 민속 박물관 같았다. 그 구석구석 마다 오랫 동안 독재와 사치를 만끽한 여인의 체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또한 거기에는 혁명군의 진압도가 그려진 칠판과 더불어 독재자의 숨가뿐 몰락의 현장이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었고 아끼노의 암살현장까지도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비록 주인 잃은 물건들과 사진들이지만 광기 어린 한 여인의 오만과 독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연신 벗기우고 서 있었다.
  4. 19 때 끌어내린 살아 있는 이승만의 동상이나 분노에 찬 시민들이 짓밟아 없애버린 이기붕의 저택과 축재의 실물들이 말라까냥궁처럼 지금도 제자리에 놓여 있기만 하다면 그들의 참 모습을 어렵지 않게 심판대에 올려 놓고 독재의 결말을 실감할 터인데 …… 우리는 너무 성급했다. 너무 성급하게 단죄하고 너무 성급하게 역사의 현장을 인멸해버리는 졸속주의자가 돼 버렸다. 
  잊혀지고 덮어진 치부는 일체의 망각이지 삼인행에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의 스승은 될 수가 없다. 오늘도 훌륭한 스승들을 낙엽처럼 쓸고 묻으면서 망각 속에 살고있는 것은 아닌지 다같이 반성하고 생각해 볼일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 들의 사랑도 흐르네.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나, 나는 여기 머물겠네.
  G.아폴리네르의 시(詩)다. 필자의 나름의 해석일지는 모르나 세월이 흐르고 사랑은 가도 나는 여기 머물겠네의 의지야 말로 가장 솔직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의 역사 의식이 아닌가 싶다. 미라보 다리가 존재함으로만이 그 시인은 과거도 미래도 늘 현재와 같이 살아 숨 쉬는 듯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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